오랜만에 만난 아이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던 어느 날, 교과서에 나온 몇몇 작가들의 친일 이력이 화제가 됐다. 문득,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도, 그리고 △△도 친일 작가잖아요.’ 그 아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교사는 문득 ‘이건 아닌데’ 싶었다. 너무 쉽게 나온 정답이 조금 불편했던 게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어떤 친일 행각을 했는지에 대한 지식 그 이상이다. 일제 강점기와 비슷한 상황이 또 닥쳤을 때, 친일파와 닮은 선택을 하면 더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게끔 하는 힘, 그러면서도 당당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게 교육의 진짜 목적에 가까울 게다.
아무런 머뭇거림이 없는, 너무 쉬운 대답이 교사에게 불편했던 것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충분한 머뭇거림의 기회가 아닐까 싶었던 게다. 아이들이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처지에 깊이 감정이입을 해보고 나서, 충분히 망설인 끝에 ‘그래도 친일 행위는 옳지 않다’는 답을 끌어내게끔 했어야 했다는 게다.
오래전에 한 잡지에서 읽은 칼럼 줄거리다. 기자 노릇으로 밥벌이를 하면서, 문득문득 이 칼럼을 떠올린다. ‘나는 지금 충분히 머뭇거리고 있는가. 너무 쉬운 정답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너무 쉽게 정답을 말하는 이들, 쉽게 이야기하는 만큼 책임도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흔하다. 정답을 이야기했으므로, 그들은 늘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내가 옳다’는 확신, 혹은 ‘내 말이 맞다’는 자기만족 아닐까.”
#2. 다시 김건모로 돌아와서
“서정주 = 친일시인”
“김건모 = 선배의 권위와 情에 호소하며,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자존감마저 구부리고, 변명에 기대어 연명하는 저급한 대중가수”
확실한가? 나는 그런 판단을 내리기까지 얼마만큼 머뭇거림이 있었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김건모가 제일 못해 보였다. 적어도 이번 무대는 그랬다. 떨어지겠구나 싶었다. 후배들 표정 관리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유려하지 않은 변명에 기대어 재도전의 기회를 받는 과정은 무언가 어색했다. 정의, 시청자와의 약속, 프로그램의 원칙, 500명의 평가단,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 등의 생각이 이리저리 오고 갔다.
동시에 떠오른 것은,
많은 후배와 관계자들, 더 나아가서는 수많은 대중 앞에서 스스로의 이름, 그러니까 김건모의 Name Value를 구부리고 무릎을 꿇고 기회를 다시 요청하기까지 시간으로 짧았으되 시공간적으로 헤아리기 힘든 “그만의 머뭇거림”.
(2000년대는 비록 놀고 있다고 혹평받고 있지만) 적어도 한 분야에서 20년을 있었던 그의 역사를 ‘100% 확실한’ 판단에 가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청중에 대한 존중, 곡에 대한 재해석력, 정성스러운 무대 준비, 그러한 것들이 비록 부족하며 프로답지 못하다 했더라도 너무 쉽게는 판단하지 말자는 것이다. Facebook이, Twitter가, 짧고도 명쾌한 글이 가지는 많은 장점 역시 존중받아야 하지만, 20년을 혹은 타인의 삶 전체를(대중가수에게는 ‘대중’이 전체일 테니), 그 누군가의 아픈 결정을 140자 안에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툭툭 던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3. 머뭇거림
김건모는 노래하는 ‘가수’지, 대중의 코드를 읽어내는 ‘제작자 혹은 기획자’로서는 역부족이었던 면이 있었다고 보인다. 김건모는 인터뷰 내내 음이탈에 집착했다. 피아노를 한 번도 틀리지 않았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래서 김건모는 김창완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는지도 모른다. “형, 내가 뭐 잘못했어? 난 잘 모르겠어….”
우리는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로봇이나 기계음을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때로 부족하고 때로 우왕좌왕하는 ‘사람’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게 아닐까?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과 양보가 더 좋았겠지만...
죽음과 고통으로 맞서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지켜내는 것이, 민족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 좋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