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 아름답고 충만한 삶을 위해
한국 사회가 직면한 큰 문제 중 하나는 “어른”의 부재다.
일제 강점기나 해방 후 시공간에서는 소위 지식인이나 문학가들이 상처받은 우리의 자존감을 꼿꼿하게 지켜주었고, 1970~80년대는 김수환 추기경, 성철 스님과 같은 위대한 종교인이 사회를 부드럽게 지탱해 주었다. 1990년~2000년대는 뛰어난 기업가와 벤처 사업가들이 사회의 어른 역할과 멘토가 되어 뒤를 따르는 젊은이들은 꿈을 키워낼 수 있었다.
반면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폭넓은 공감을 받으며 따뜻하고 때로 뼈아프게 조언해 줄 수 있는 선배나 스승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본주의와 세계화가 고도화 됨에 따라 부작용으로 나타난 여러 변칙(병역 면탈, 불법 재산 증식, 탈세, 위장 전입, 논문 표절, 음주 운전, 성 관련 범죄 등 소위 7대 비리)에 안 걸리는 “어른”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큰 문제지만(“수신제가”의 이슈), 앞선 세대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 자체가 전체적으로 가벼워 진 것 역시 문제적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인 “꼰대”는 어찌 보면 매우 위험한 Frame이라는 생각이다. 과거 세대가 이루었던 성과와 업적, 그들의 빛나는 경험과 지혜는 꼰대라는 필터를 거쳐 아래 세대로 전수되지 못한다. 어른은 부재하고 젊은이는 갈팡질팡한다.
인터넷이 열어준 “1클릭 1표”는 순기능이 많지만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여러 부작용이 있다. 번뜩이는 재치나 자극적인 표현도 클릭을 받아야 하고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지만, 진중하고 따뜻하게 조언하는 “어른”의 말씀 역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때로 길고 지루하고 따분하더라도!)
선배는 후배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후배는 그 마음씀씀이에 감사함을 전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임을 믿는다. 그러기에 한국 사회에 있어 권위 있는 “어른”의 부재와 양방향 소통의 멸종은 안타깝고 또 슬프다.
https://www.youtube.com/watch?v=Q2BHEQpZAMs
“젊은이들의 가장 큰 실수는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 그러니까 내일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 이 순간의 현실을 잡으라는 거죠.”라며 꼬장꼬장 하게 조언해 주던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인터뷰. 삶의 리듬이나 루틴이 흔들릴 때 인생 선배들의 글과 목소리를 찾고는 하는데, 그 어른이 이렇게 늙어가고 또 죽어간다니 허전하고 슬프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23&aid=0003481055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가장 찌릿한 대사, 인생에 있어 이렇게 멋진 찬사가 있을까? 또 반대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멘토나 캡틴을 가진다는 어떤 의미일까?
《죽은 시인의 사회》영화 안에서 쉽게 지나치는 일화 중 하나는 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이다. (키팅 선생님 로빈 윌리엄스도 현실에서는 2014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왜?”는 분명히 기억하기 어렵다. 한동일 신부님의 책 『라틴어 수업』 첫 번째 에피소드가 바로 그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기억하나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대사로 유명하죠? 오늘에 집중하고 현재를 살라는 의미의 라틴어인데요, 여기저기 많이 인용되고 있어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이 말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다음의 사실은 영화를 본 분들이라도 잘 모를 거예요. 영화 속에서 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그가 자살하기 전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겹도록 외우던 것이 바로 라틴어 동사 변화라는 사실입니다.
“나다움이란, 인간다움이란 과연, 무엇일까요?”라고 묻는 한동일 신부님의 인터뷰를 읽고 또 읽었다. 신부님의 아름다운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언젠가 꼭 한번 뵙고 싶다.
https://topclass.chosun.com/board/view.asp?catecode=I&tnu=202001100000
동시에, 호기롭게 샀던 706 페이지의 『카르페 라틴어 (종합편)』을 보니, 내가 과연 죽는 날까지 이 책의 5%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고, 또 그러면서도 위대한 작가 김영하의 주옥같은 말,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라는 말을 떠올리며 용기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