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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턍규 Dec 21. 2022

정약용의 가르침을 따라 평생을 산 단 한 사람

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연말을 맞아 몸과 마음을 다듬고, 기본을 생각한다.


일의 기본, 공부의 기본, 삶의 기본.


펼쳐보는 것은 정약용 선생과 그의 가르침을 따라 평생을 산 단 한 사람, 황상의 이야기.


***


  정민(2011), 『삶을 바꾼 만남』


  [ 저자 서문 중에서... ]


  사제의 정리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아무도 스승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학생은 있어도 제자가 없다. 물질적 교환가치에 의한 거래만 남았다. 마음으로 오가던 사제의 도탑고 질박한 정은 찾아 볼 길이 없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슬퍼한다. 이 글을 쓰는 까닭이다. (…) 바라기는 이 글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내 삶에서 그런 만남을 가지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를 헤아려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만남을 반복한다. 그토록 좋고 간절했다가 끝에 가서 싸늘한 냉소로 남는 만남도 있고, 시큰둥한 듯 오래가는 은은한 만남도 있다. 나는 이 한 생을 살면서 어떤 만남을 가꾸어가야 할까? 이제 그들은 가고 남은 자취는 덤불 속에 묻히거나 수몰되고 없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조용히 말하련다. “이런 사람이 있었네” 라고.



***


  [ 본문 중 정약용 선생과 황상의 일화 ]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며 인사를 올렸다.


  ― 너는 좀 남거라. 이를 말이 있다.


  꽁무니에 서 있던 더벅머리 소년이 쭈뼜댔다.


  ―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큰사람이 되어야지.


  소년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얼굴을 붉힌 채 되삼킨다.


  ―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지. 게을러선 못쓴다.


  소년이 어렵게 입을 연다.


  ― 선생님! 그런데 제게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 그렇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보렴.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너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없구나.


  ― 그것이 무엇입니까?


  ― 첫째는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가르치면 한 번만 읽고도 바로 외우지. 정작 문제는 제 머리를 믿고 대충 소홀히 넘어가는 데 있다.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지. 둘째,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질문의 의도와 문제의 핵심을 금세 파악해낸다. 바로 알아듣고 글을 빨리 짓는 것은 좋은데, 다만 재주를 못 이겨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자꾸 튀려고만 하고, 진중하고 듬직한 맛이 없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대번에 깨닫지만 투철하지 않고 대충 하고 마니까 오래가지 못한다.


  ― 내 생각을 말해줄까?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들이파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며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다. 앞뒤가 꼭 막혔다고? 융통성이 없다고 했지? 여름 장마철의 봇물을 보렴. 막힌 물은 답답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돈다. 그러다가 농부가 삽을 들어 막힌 봇물을 터트리면 그 성대한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단다. 얼마나 통쾌하냐? 어근버근 답답하다고 했지?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나중에는 튀어나와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 반반해져서 마침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스승은 감격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 잠깐 앉거라. 내가 오늘의 이 문답을 글로 써주마. 벽에다 붙여 두고 마음을 늘 다잡도록 해라.


  이 소년의 이름이 황상이었다. 그는 감격했다. 서울에서 오신 하늘 같은 선생님이 너도 할 수 있다고, 너라야 할 수 있다고 북돋워준 한 마디가 소년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놓았다. 이 한 번의 가르침 이후 소년의 인생이 문득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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