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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덕후 Jan 11. 2019

카페 드 람부르 Cafe De Lambre

 일본 카페투어#6


이 곳은 커피 애호가라면 다양한 의미에서 반드시 한 번은 방문해야 하는 곳이다. 도쿄 긴자의 뒷골목에 위치한 이곳은 1948년에 ‘세키구치 이치로’씨가 시작한 카페이다. 그리고 얼마 전 105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카페에 출근해 직접 카페를 관리하셨다고 하니, 고인의 커피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으셨다고 하니 말 그대로 커피와 결혼했다는 말을 이런 분 정도 돼야 부끄럽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이런 그의 커피 사랑이 유별났던 만큼, 이 곳에서 판매하는 커피 또한 쉽게 접할 수 없는 특별한 것들이다. 일명 에이지드 커피 Aged Coffee. 


와인을 숙성시켜 빈티지 와인을 만들듯이, 이 곳에는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 환경에서 숙성된 생두를 가지고 커피를 로스팅한다. 사실 내가 처음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빈티지 커피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현재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는 그 해에 수확된 커피를 뉴 크롭 New Crop 그렇지 않은 커피를 Old Crop으로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물론 New Crop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오래된 생두는 맛이나 향이 떨어질 것이라고. 그러나 한 가지 단서가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 곳의 커피를 마셔보고 난 뒤에 알게 되었다. 그 단서는 바로, 생두를 어떻게 보관했는가. 물론 나도 그 자세한 비결을 알지는 못한다. 세키구치 이치로 씨도 이런 에이지드 커피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가 그의 긴 일생을 커피에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에, 이렇게 특별한 커피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지 않았을까.


주황색 간판이 눈에 띈다


나는 이곳에 총 3번을 방문해보았는데, 방문할 때마다 항상 같은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첫 방문에서는 내가 태어난 연도와 비슷한 시기에 수확된 80년대의 커피를 주문하였다(정확한 연도와 종류는 아쉽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커피를 주문하고 바리스타가 융드립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치 로봇 같은 느낌의 정확하고 절제된 듯한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연극 한 편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내가 주문한 커피를 내려주고 있는, 오너 바리스타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는 기물들


이 카페의 여러 기물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특히 위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빙장고는 무려 70년이 넘은 제품이라고 한다. 바리스타의 드립 하는 모습과 카페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고 있으니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우선은 잔이 매우 작다. 원두는 대략 18g을 쓰는 것 같으니, 상당히 농도가 높은 편인 듯했다. 과연 30년이 넘은 커피에서는 어떤 맛이 날 것인가? 흔히 사람들이 오래된 커피에서 난다고 이야기하는 발효취가 나지는 않을까? 


기우였다.


첫 모금을 머금는 순간 복합적인 맛이 입 안을 꽉 채웠다. 개인적으로 좋은 커피와 그렇지 않은 커피를 구분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맛과 향의 복합성이다. 어떤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베리 Berry 류의 달콤한 맛, 레몬의 상큼한 맛, 브라운 슈가 Brown Sugar 의 단맛 등등 수십 가지 맛이 복합적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또 어떤 커피를 먹으면 불에 그을린 쓴맛 그리고 약간의 단맛, 이 정도의 단순한 맛과 향의 조성만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예상했던 이 30년이 넘은 커피의 맛은 후자 쪽이었다. 


생각보다 용량이 적은 커피 잔


커피의 맛이란 결국 향이 9할이다. 그런데 그 향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휘발성을 가지고 있다. 휘발성이 없다면 애초에 향 분자가 우리에게 날아오지를 못하여 우리가 향이란 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30년이 지났으니 대부분의 향이 유실되었을 거라고 예상한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커피가 향이 중요한 음료라면 와인은 맛이 중요한 음료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데 막상 먹어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약간의 숙성된 듯한 맛이 분명히 존재하고 갈색 박스 종이에서 나는 듯한 향이 미미하게 있기는 했지만, 이 커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마셨다면 이 커피가 30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결코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내추럴 커피가 가지는 와이니 Winey 한 뉘앙스의 숙성된 듯한 부드러운 산미와 쓴맛을 가지고 있었다. 18g의 커피로 100ml 가량을 아주 천천히 추출했기 때문에 농도 또한 매우 강해서 첫인상이 아주 강렬했다. 한 마디로, 언제 수확했든 상관없이 그냥 맛있는 커피였다. 


사실은 맛이라는 것은 참 우습다. 이 똑같은 커피를 한국의 한 트렌디한 카페에서 완벽하게 동일한 방법으로 내려 같은 맛을 낸다고 하면, 과연 이 긴자의 오래된 카페에서 마실 때 내가 느꼈던 그 맛이 그대로일까? 맛은 주변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요즘 동남아 여행 그중에서도 특히 태국 여행을 많이들 가는데, 하나같이 하는 말이 “태국에서 먹을 땐 싱하 Singha 맥주의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는데, 한국에서 똑같은걸 사 먹어도 그 맛이 안 난다.” 뭐 이런 말이다. 맥주가 다를까? 아니다, 일부 수입 맥주는 한국 맥주공장에서 OEM 형식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이 맥주는 해외에서 제조한 맥주를 그대로 수입해 오고 있다. 물론 신선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마시는 환경의 차이다. 느지막한 저녁에 태국의 뜨뜨 미지근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마시는 그 싱하 맥주의 맛은 오롯이 맥주 자체의 맛만은 아닌 것이다. 


카페 드 람부르를 방문해야 하는 당신이 꼭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곳의 커피는 꼭 이 매장에서 마셔봐야만 한다.



70년의 세월을 묵묵하게 견뎌낸 100세를 넘은 주인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직접 매장에 나와 관리하던 가게. 그 세월만큼이나 낡은 기물들이 연출해내는 과장되지 않은 클래식한 분위기. 그 속에서 마시는 클래식한 커피 한 잔.




자, 이 정도면 이 곳을 방문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카페 드 람부르의 에이지드 커피 메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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