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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덕후 Jan 11. 2019

오니버스 커피 Onibus Coffee

일본 카페투어#5

나는 아직도 카페 창업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언젠가는 나의 손길과 정신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나만의 공간을 꼭 만들고 그 안에서 세월을 견디고 싶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언제나 느낌이 좋은 공간을 방문할 때면 항상 그 느낌과 이유를 기억하려고 애쓴다. 이 오니버스 커피 Onibus Coffee 를 방문하고 난 후로 난 늘 미래의 나의 카페 창문 너머로 기차(혹은 전철)이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도쿄의 나카메구로 Nakameguro 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으면 오니버스 커피를 만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SNS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도쿄에 방문하면 한 번쯤 방문해야 하는 유명 카페가 된 이곳. 오니버스는 포르투갈 어로 ‘버스’, ‘만인을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상의 공간을 창출하고 싶었다고 한다. 


처음 마주친 오니버스 커피를 아주 엉성하게 만들어간 네모난 프레임 안에 담아보았다. 이렇게 멋진 외관을 가진 카페가 또 어디 있을까? 카페 옆에는 아주 크고 오래된 벚꽃 나무가 있어서 봄이면 만개하고 그 나무 아래로는 동네 아이들이 뛰노는 아주 작은 놀이터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전철이 수시로 지나가는데 어쩐지 그 모습이 참 평화롭다. 


미리 준비해 간 종이를 대고 찍어본 오니버스 커피


카페의 전면에는 계산대와 에스프레소 바가 위치해있고 우측에는 3개의 브루잉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무 원목의 색감과 밝은 베이지 톤의 벽면의 색이 너무 조화롭게 잘 섞이고 있었다. 한국에도 이렇게 개성 있는 외관을 가지 카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전에는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면 십중팔구 새하얀 벽면에 노출된 콘크리트로 마감한 비슷비슷한 인테리어가 크게 유행하던, 일종의 암흑기도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머지않아 한국에도 저마다의 개성이 넘치는 멋진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길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이 없다. 얼마 전 오픈한 연남동의 커피냅 로스터스 Coffee Nap Roasters 와 같은 멋진 인테리어를 가진 카페들이 더 많아 지기를.


나는 이날은 브루잉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잠시 쉬어갈 생각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브루잉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2층으로 올라가니 작고 조용한 공간이 나왔다. 조명은 어둡게 낮추어 놨으나 큰 창문을 통해서 따뜻하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커피를 한 두 모금 홀짝홀짝 마시고 있으니, 창문 너머로 전철이 지나갔다. 큰 창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햇빛, 저마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향긋한 커피 너머로 들려오는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 왠지 모르게 가슴속 깊은 곳까지 따뜻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니버스 커피 2층


행복하다.


그 순간에 분명 나는 행복하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한 잔의 커피는 때론 실제 온도 이상으로 따뜻하다


나는 이번에도 에티오피아를 마셨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내추럴 Natural 방식으로 가공된 에티오피아 커피를 좋아한다. 빨갛게 익은 커피 체리를 가공해서 생두 Green Bean 을 얻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가장 흔한 방식은 워시드 프로세스 Washed Process 다. 간단히 말하면 껍질을 벗기고 그 안에 있는 과육을 물로 깨끗이 씻어내는 방법이다. 가장 대표적인 커피의 가공방법으로 워시드 커피는 깔끔한 뒷맛과 향긋한 산미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물이 풍부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내추럴 프로세스 Natural Process 를 사용해왔다. 방법은 간단하다. 커피 체리를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널어놓고 수일간 말리는 것이다. 다만 이 가공법은 중간에 비가 오거나 충분한 햇볕을 받지 못하면 커피 체리가 쉽게 상할 수 있어 관리가 어렵다. 성공적으로 관리된 생두를 얻어낸 경우에는, 과육의 일부가 생두에 잘 스며들어 커피에 복합적이고 깊은 맛을 더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내추럴 커피를 마시면 잘 익은 포도로 빚어낸 와인의 느낌이 난다고 생각한다. 


커피는 때로는 실제 온도 이상으로 따뜻하다


오니버스 커피는 기본적으로 약하게 볶는 커피를 지향하는 것 같았다. 사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커피는 스타벅스 커피와 같이 아주 강하게 볶은 커피인 듯하다. 이렇게 커피를 강하게 볶을 경우에는 쓴맛과 단맛이 증가하지만, 상대적으로 산미나 커피의 풍부한 향은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소실된다. 반면 약하게 볶은 커피는 일반적으로는 커피의 향이 풍부하고 산미가 도드라지게 되는데, 바로 이 커피의 산미가 바로 스페셜티 커피에서 늘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불편한 맛’이다. 


사실 ‘맛’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맛에는 오직 5가지만이 존재한다. 


단맛, 쓴맛, 짠맛, 신만, 감칠맛.


그 외에는 다 향이다.

세상에 사과 맛은 없다. 


사과에는 단맛과 신맛에 더해 사과 향이 더해져 있을 뿐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맛은 단맛과 감칠맛뿐이라고 한다. 인간의 감각은 수만 년간의 진화의 역사에서 생존을 위해 발달해왔다. 탄수화물은 기본적으로 단맛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이 필수적이다. 단백질에는 감칠맛이 있다(감칠맛은 처음에는 맛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일본의 한 화학자가 감칠맛 수용체를 찾아내면서 실재하는 맛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단백질 또한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감칠맛을 좋아한다(우리가 미원을 좋아하는 이유라고나 할까). 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는 신맛과 쓴맛을 싫어한다. 자연에서 신맛은 대체로 음식이 상했음을 나타내 주는 표시이고 쓴맛은 독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자연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현재 쓴맛과 신맛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두 가지 맛이 나는 음식 중에서도, 안전하다는 것이 학습된 음식만을 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문화가 본능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다른 설명으로는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습성인 다양성 추구 때문이다. 단맛과 감칠맛으로는 도저히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신맛이 나는 커피를 불편해한다. 이유는 아마도 신맛이 우리의 본능이 거부하는 맛 이기도 하고 신맛이 나는 커피에 대한 학습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더해 나름 독창적인(?) 설명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커피는 대체로 신맛만 강할 뿐 단맛이 없는 커피라는 생각이다. 신 맛이 기분 좋은 맛이 되기 위해서는 단맛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과일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신맛만 강한 레몬은 먹기에 불편하고 맛이 없지만, 동일한 신맛이 있더라도 단맛이 강하면 새콤달콤 맛있는 귤이 된다. 보통의 입맛이라면 신맛만 강한 레몬을 그 자체로 즐겨 먹지는 않을 것이다. 잘 재배되고 잘 로스팅된 좋은 커피는 산미도 좋지만 그 기저에 깔려있는 단맛이 안정적으로 맛의 밸런스를 잡아준다. 실제로 스페셜티 커피를 평가하는 SCA의 커핑 기준을 봐도 단맛은 핵심적인 요소이다. 


단맛이 뒷받침이 되는 신 커피는 그렇다면 누가 먹어도 맛있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습이 또한 필요하다. 항공사에 근무하기 때문에 나는 상대적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다. 해외여행을 가면 가급적 현지의 음식을 다양하게 접해보려고 노력한다(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한식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된 만큼, 한식의 유혹도 강해졌다). 작년에 프랑스에 방문했을 때 나는 생애 첫 미슐랭 2 스타 레스토랑을 찾아가 푸아그라와 바게트가 나오는 요리를 주문했던 기억이 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프랑스의 푸아그라구나! 하고 한입을 베어 먹는 순간. 아뿔싸, 그 독특한 촉감과 생 간에서 나오는 비릿한 냄새에 하마터면 구역질이 나올 뻔했다. 혹시 이 식당의 푸아그라에서 이상한 맛이 나는 건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 옆 자리에서 나와 같은 요리를 너무나도 맛있게 먹고 있는 프랑스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2층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결국 맛이라는 건 일종의 학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김치를 먹으며 자라온 한국인에게 김치의 맵고 신맛과 젓갈의 비릿한 맛은 입맛을 돋우지만, 처음 김치를 접하는 외국인에겐 너무 맵고 동시에 상한 맛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깻잎을 외국인들은 독특하고 강한 향이 나서 먹기 힘들어하고, 중국과 동남아 남미 등지에선 너무도 대중적인 고수의 향이 한국인들에겐 역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집밥을 그리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맛이야 말로 가장 오래 학습된 가장 익숙한 맛이기 때문은 아닐까?  


오니버스 커피의 2층은 이런 잡다한 생각을 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잊을만하면 존재감을 드러내며 지나가는 전철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쩐지 평소에 풀리지 않던 복잡한 생각들이 엉킨 실타래가 풀어지 듯 스르르 풀어질 것만 같은, 그런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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