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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덕후 Jan 18. 2019

호주가 준 선물;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행복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6

나는 책 읽기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2016년 연간 평균 독서량은 8.7 권이었다고 한다. 그나마도 일 년에 수 십 권씩 읽는 다독가들이 평균치를 높여서 이 정도지 사실은 1년에 1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나의 독서량은 평균을 상회하는 편이다 보니, 주변에서 나에게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묻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내가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한 책이 바로 마크 롤랜즈 Mark Rowlands 의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인 것 같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마크 롤랜즈라는 철학과 교수가 우연히 브레닌이라고 나중에 이름을 지어준 늑대(늑대의 피가 97% 섞인 늑대개를 입양하려고 했으나 사실은 100% 늑대였다)를 입양해 키우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브레닌이 토끼를 사냥하는 것을 바라보고 난 뒤 저자가 사유하는 부분이었다. 


브레닌이 사냥을 할 때 행복했다면, 녀석에게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사냥에는 긴장의 고통, 정신과 신체의 경직, 공격하고 싶은 욕망과 그렇게 하면 실패한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가장 원하는 걸 지속적으로 억제해야 하는 게 사냥이다. 

이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은 황홀경이라기보다 고통일 것이다. 

아마 누군가는 브레닌이 토끼를 잡았을 때만 행복했을 거라 말할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길 바란다.


브레닌은 토끼를 잡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마크 롤랜즈의 생각에 따르면 행복 이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양식이다. 


지구 상의 모든 동물 중에 오로지 인간만이 감정에 그토록 집착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이다. 그리고 때로는 불편한 순간이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체험하는 순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브레닌이 사냥을 하기 위해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던 그 불편한 순간이 이 늑대라는 본질적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체험하는 순간, 즉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 있다. 


나는 어떠했던가?


호주에서 나는 주 80시간이라는 장시간의 노동으로 인해 늘 피로에 지쳐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호주 땅에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정착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듯한 느낌으로 살아내던 강렬한 하루하루이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여느 또래 아이들과 다름없이 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갔다 오며 살아오다가 거의 내 인생에서는 처음으로 남들과는 확연히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냈던 하루였다. 



멜버른의 거리공연은 수준이 꽤나 높다
멜버른에서 살던 집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멋진 풍경


‘나’라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나’라는 인간이 정말 힘들고 외로운 순간에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나’라는 인간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존재로 인식되는지 따위에 것들을 강렬하게 체험한 순간이었다. 타지에서 어떠한 보호 장치도 없이 내 존재가 가장 위태로웠기 때문에 내 존재에 대해서 더 집중했던, 그래서 내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체험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난 너무 힘들지만 역설적이게도 정말로 행복했었다. 


아직도 가끔씩 호주에서 내가 맡았던 공기의 냄새와 질감을 떠올린다. 때로는 외로움의 냄새가 낫던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움의 질감이 느껴졌었던. 


하지만 내가 가장 크게 숨을 쉬며 공기의 냄새와 질감을 절실하게 체험했던 순간.


나는 그때 정말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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