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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덕후 Jan 13. 2019

맨리 커피 Manly Coffee

일본 카페투어#11


호주에는 맨리 Manly 라는 지명이 많았다. 시드니에도 본다이 비치 Bondi Beach 와 함꼐 시드니를 대표하는 해변가가 바로 맨리 비치 Manly Beach 다. 그리고 내가 6개월을 지냈던 브리즈번에도 맨리라는 동네가 있었다. 해수욕을 하는 해변가라기보다는 수 백대의 요트들이 정박되어 있는 요트 정착장으로 유명한 동네였다(한국에선 볼 수 없는 정말 멋진 풍경인데 아쉽게도 찍어두었던 사진을 찾지를 못했다).


후쿠오카 어느 외진 골목 속에 숨어있다시피 한 이 카페의 이름도 맨리 커피다. 카페의 로고도 하늘색의 돛단배를 그려놓은 것을 보니, 호주의 맨리 비치와 어떤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소개한 오사카의 멜 커피 로스터스 Mel Coffee Roasters 의 멜이 호주의 멜버른에서 따온 것처럼. 이 맨리 커피는 아직은 블로그에도 후기가 많지 않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카페는 아닌 듯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 어떠한 관광 포인트도 없을뿐더러 굉장히 외진 골목까지 들어가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찾아가도 매장에는 테이블 하나 없다. 유리문에 기대어 있는 4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의자가 전부이다. 나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목적지를 바로 앞에 두고 10분 이상을 헤맸던 기억이 있다. 도저히 이 골목에 카페가 있을 리가 없다, 하고 다른 곳으로 돌아 돌아 헤맸는데, 맨리커피는 바로 그 ‘절대로 카페가 있을 리가 없어 보이던 바로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혹시 이곳에 방문해서 사진에 보이는 입간판을 발견한다면 의심하지 말고 직직하라. 그리고 겁먹지 말고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 유심히 찾아보면 이 작은 카페를 발견할 것이다. 내가 이 곳에 방문했을 때는 일본 아주머니 한 분이 커피를 마시며 남자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여자 바리스타는 로스팅한 원두를 소분하고 있었다.


굉장히 작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사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내가 가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로. 너무 공간이 작아 내 존재가 조용히 커피를 즐기러 온 일본인들에게 행여나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노파심마저 들었다. 다행히 남자 바리스타가 영어를 잘해서 의사소통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맨리 커피를 가기 위해선 이 골목으로 쭉 들어가야 한다



이곳은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는 노머신 카페인데 주문하는 방식이 조금 독특했다. 테이블 위에 주문 종이가 있고 그 옆에 지우개가 달린 연한 갈색의 연필 하나가 놓여 있다. 종이에 하리오 Hario V60 드리퍼와 에어로프레스 Aeropress 중 어느 것으로 추출할 것인지를 체크하여 바리스타에게 전달하면 주문이 완료되는 방식이다. 라테 종류의 경우는 에어로프레스로 추출을 하여 제공하고 있었다.



에어로 프레스는 수동으로 공기압을 만들어 커피를 추출하는 기구로, 미국의 에어로비 Aerobie 라는 회사의 대표인 앨런 애들러 Alan Adler 가 발명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드립 커피와는 달리 에어로 프레스에는 중력보다 더 큰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브루잉 커피보다 더 많은 양의 성분을 풍부하게 추출해낼 수가 있게 된다. 때문에 드립 커피보다는 더 농도가 진하고 바디가 강한 커피를 내릴 수 있다. 일반적인 드립 커피에 우유를 넣으면 커피의 농도가 너무 낮아 커피의 맛이 우유에 진다. 결국 커피 맛이 너무 연해져서 이도 저도 아닌 밋밋한 맛이 된다. 이에 반해 에어로프레스는 상대적으로 더 높은 농도의 압축된 커피를 추출할 수 있다. 아쉽게도 나는 직접 마셔보지는 못했지만, 적절한 레시피로 추출한 에어로프레스 커피로는 충분히 맛있는 라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맨리커피 매장 전경


내가 이 매장을 방문했을 당시에 한참 하리오 V60로 커피를 맛있게 추출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고 시도해보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주저 없이 하리오 V60로 추출을 부탁했다.


주문서와 연필이 놓인 테이블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매장 자체 로스팅한 원두가 아닌 덴마크의 커피 콜렉티브 Coffee Collective 의 원두를 사용하고 있었다. 커피는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었다. 사용한 원두가 아주 약하게 라이트 로스팅된 북유럽의 커피이다 보니, 강한 농도로 추출한다면 산미가 자칫 너무 도드라져 마시기에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낮은 수율로 추출을 함으로써 실제 북유럽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듯이 차 Tea 와 같은 느낌으로 여러 잔을 마셔도 부담이 없는 커피를 추출하고자 의도한 맛인 것 같았다.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훌륭한 데일리 커피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조금 더 찾아보니, 이 곳은 일본에서도 에어로프레스 대회를 주최하는 카페로서 에어로프레스 추출 커피가 카페의 일종의 시그니쳐였다. 에어로프레스 추출을 부탁할 걸! 하는 후회는 이미 너무 늦었 버렸지만.


맨리 커피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테이크 아웃 컵이다. 보통은 하얀색 종이컵에 갈색 슬리브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의 컵은 올록볼록한 앰보싱 처리가 되어있어서 별도의 슬리브를 사용하지 않아도 뜨거운 커피가 담긴 컵을 쥘 수 있었다. 디자인 적으로도 예쁜 것은 물론 실용성도 놓치지 않는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리 커피의 테이크 아웃 컵




인적 드문 한적한 곳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다른 한국인들을 마주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후쿠오카의 카페를 가고 싶다면, 이 맨리 커피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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