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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덕후 Jan 13. 2019

커피 라이츠 Coffee Wrights

일본 카페투어#10


내 기억이 닿는 한 나는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다. 


서울에 살면서 난 한 번도 서울이 작은 도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서울은 사실 굉장히 크다. 서울의 번화한 도로변 빌딩 숲에서 조금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적한 동네들이 나온다. 홍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연남동이나 상수동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은 바로 이런 곳에 모여든다. 유연준 교수가 쓴 ‘도시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예술가나 건축가 혹은 음악가들이 모여드는 동네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동네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소위 말하는 ‘핫 플레이스’가 되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고 결국 그곳에 있던 예술가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과거에는 그것이 홍대였다가 신사의 가로수길이었다가 현재는 익선동과 같은 동네가 아닐까 하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동네에는 늘 그렇듯이 작은 카페, 작은 공방, 작은 옷 가게들이 많이 생긴다. 나는 이런 작은 곳들이 좋다.


서울보다도 도쿄는 3배가 크다. 그렇다면 도쿄에는 이렇게 골목에 형성된 작은 ‘예술가 동네’들이 서울에 3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들었다. 그리고 그런 동네에서 나오는 예술적 원동력이 도쿄가 세계적인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를 배출하는 도시로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도쿄 시부야 Sibuya 의 그 유명한 교차로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들의 일과와 모임을 끝낸 주말에는 도쿄의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 한적하게 자신만의 예술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쿄 시부야의 교차로(물론 도쿄라고 다 이렇게 붐비지는 않는다)



도쿄의 골목을 지나다니다 보면 느낌이 좋은 카페들이 참 많다. 이번 도쿄 여행에선 아사쿠사 Asakusa 에 위치한 호텔에서 머물렀다.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근처에 카페 몇 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인스타그램 Instagram 에서 우연히 본 리브스 커피 Leaves Coffee 라는 카페다. 



작은 공간을 햄버거집과 나누어 쓰고 있었다



조용한 골목길 모퉁이에 위치한 아주 작은 가게인데 심지어 햄버거 집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굉장히 독특한 콜라보라고나 할까. 큼지막한 창문을 통해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여성 바리스타 혼자서 작은 매장 안을 분주히 오가며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북유럽 노르웨이에서 도쿄에 지점을 낸 카페인 후글렌 Fuglen 원두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날 아침은 날씨가 꽤 쌀쌀해서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시켜서 다음 카페를 방문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심플하면서도 멋스러웠던 테이크아웃 컵


구라마에 Kuramae 라는 작은 동네까지 대략 15분 정도를 천천히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걸어갔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어린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작은 놀이터를 중심으로 여러 카페와 작은 상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방문한 커피 라이트. 외관은 굉장히 투박하다. 특히 카페 정문은 그 안에 야채 가게가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투박한 미닫이 문으로 되어있다. 의도한 것일까? 아니면 기존에 다른 용도의 건물로 카페가 들어오면서 문은 그대로 둔 것일까? 알 수는 없지만 왠지 후자 쪽이 아닐까, 야채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새로 들어온 카페는 동네의 분위기에 쉽게 녹아들기 위하여 문은 그대로 두기로 결정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노란빛이 도는 조명과 아이보리 빛이 도는 벽 그리고 나무 결이 드러나는 테이블과 각종 가구들이 어우러져서 꽤 아늑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특히 단발 정도 되는 길이의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너무나도 친절하게 응대해준 남자(여자가 아니다) 바리스타가 이 공간의 아늑함을 완성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매장 내부에 비치된 출력물을 보니 이 커피 라이트는 도쿄에 매장을 4곳이나 가지고 있는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산겐자야점, 오모테산도점, 시바우라점 그리고 내가 방문한 구라마에 지점까지.  



이번에는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에 매장 내부를 더 유심히 살펴보았다. ‘Today’s Single Origin’ 이라고 적힌 메뉴판이 눈에 들어온다. 각 메뉴 앞에 로스팅된 원두 한 알씩을 붙여놨다. 커피를 볶는 정도에 따라서 원두의 색깔은 밝은 갈색에서 짙은 갈색까지 색이 다양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약하게 볶아 커피의 본연의 산미와 향을 로 로우 Raw 한 상태로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색으로 말하자면 밝은 갈색의 원두다. 이 곳에 메뉴판에는 원두가 한 알씩 붙어있어 내가 좋아하는 원두를 찾기가 수월했다. 원두의 크기와 색을 보여주는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두를 한 알씩 붙여놓은 싱글 오리진 메뉴판



작은 매장의 한 켠에서는 한참 로스팅이 진행 중이었다. 로스터는 후지 로얄 3kg 직화식 로스터기로 보였다. 로스터리 카페의 가장 강점은 바로 이 커피를 볶을 때 나는 향이다. 고소한 커피 향을 맡으면서 커피를 마시면 당연하게도 커피가 훨씬 더 고소하게 느껴진다.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은 봤어도 커피 볶는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문득 이곳에서 원두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100g 짜리 원두를 팔고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티오피아 게뎁 반코 고티 Ethiopia Godeb Banko Contti 라고 적힌 원두를 하나 구입했다. 한국에 돌아와 마셔보니 굉장히 밝은 과일 차 느낌이 강했고 특히 적포도의 상큼한 뉘앙스가 강한 훌륭한 커피였다.


디저트와 메뉴판


이미 나는 이 카페의 분위기에 반해버렸다. 가끔씩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가는 공간이 가끔 있는데, 이곳이 왠지 그랬다. 


이미 조식을 배불리 먹고 왔기 때문에 맛보지는 못했지만 이 곳에서 파는 토스트도 앙버터 토스트가 상당히 유명한 듯했다. 다음에 방문한다면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문한 라테가 나왔다. 왠지 모르게 더 머물고 싶어 지는 공간이었으나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을 했기도 하거니와 토스트와 함께 커피를 즐기는 손님들로 이미 내부의 몇 안 되는 자리가 가득 차있었다. 라테는 정말로 맛있었다. 산미가 도드라지는 커피라기보다는 견과류의 고소한 맛과 초콜릿의 달콤함이 강하게 느껴지는 정말 밸런스가 좋은 라테였다. 다행이다.



원두도 판매하고 있다
주문한 아이스 라테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는데 혹시라도 커피가 별로 라면 이 곳에 다시 방문할 일이 없어질 텐데, 맛있어서. 또 오게 되겠구나 이곳은. 그런 안도감을 느꼈다라고나 할까? 아직은 블로그에 검색해도 많이 나오는 카페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이 쿠라마에 점에 방문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후지로얄 직화식 로스터기
너무도 친절했던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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