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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덕후 Jan 23. 2019

불혹의 나이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유혹의 삶

에세이#1

나는 열다섯 살에 ‘지우학(志于學)’ 하고
삼십에 ‘이립(而立)’ 하고
사십에 ‘불혹(不惑)’ 하고
오십에 ‘지천명(知天命)’ 하고
육십에 ‘이순(耳順)’ 하고
칠십에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했다.


공자의 ‘논어’에 나온다는 이 구절은 너무나 유명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예전부터 사십에 ‘불혹’ 한다는 말이 특히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불혹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유혹에 혹하지 않는다’는 뜻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마 ‘불혹’의 상태를 ‘어른’의 상태와 동일시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아이처럼 웃을 것


위 글귀는 최승자 시인의 시집 ‘이 시대의 사랑’이라는 시집에 수록된 ‘올여름의 인생 공부’의 일부이다.

나는 이 시를 대학생 때 처음 읽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큰 영감이 되는 구절이다. 


불혹의 상태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에 일종의 권태(倦怠)가 찾아온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쉽게 유혹당했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것들 모두가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의 대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모든 것들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우리는 길가에 핀 들 꽃의 아름다움에 혹하지 않는다.

더 이상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의 경계를 넘으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익숙함에 만족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다.



나는 단지 그게 싫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것들에 혹하는 ‘유혹의 삶’을 살고 싶다. 

반복되는 일상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싶다. 철학자 이진경 교수는 ‘늙음’이라는 것은 입력 Input 은 없고 출력 Output 만 있는 상태라고 정의한 바 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배우고 또 탐험하고 싶다. 평생을 먹어온 음식, 평생을 바라본 하늘, 평생을 디뎌온 땅이라도 그것들에 달관하거나 도통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철없는’ 아이의 모습일지 몰라도,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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