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2
만약 내가 다시 한번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언제나 슬픈 결말로 귀결된다.
인생에는 아쉽게도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만일 또 한 번의 삶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은 이렇게 살아보고 또 한 번은 다르게 살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삶의 시행착오들을 다음 생에서는 수정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나이를 세는 숫자가 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는 점이 하나 있다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어두운 면까지 받아들이는 불편한 솔직함을 갖는 방법이다.
어느덧 30대에 다다르니 이제는 내가 그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치부들을 더 이상은 외면하기가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결국 내가 되고 싶던 모습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나는 결국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사랑을 받고 또 그 사랑을 나눠주는 방법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변화는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 만으로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 경우에는 ‘정’을 갖는 것이 그렇다. 오늘부터는 ‘정’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마음먹은 적이 많았지만 내가 다음날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장 미안한 사람이 있다면 나의 부모님.
나는 나의 어머니가, 나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어쩌면 잘 모른다.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요즘엔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요새는 어떤 걱정거리로 머리가 아픈지 나는 사실 잘 모른다.
부모님께 잘해야지 생각하면서도 결국 계속되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부모님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늘 시큰둥하기만 하다. 어느덧 부모님과 나 사이에 타성에 젖어 만들어진 관계의 유격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또 나는 좋은 친구가 별로 없다.
친구가 없다는 것은 마치 내가 인생을 잘 못 살았다는 가장 강력 증거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오랜 시간을 속으로 우겨봤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좋은 친구가 별로 없다.
어쩌면 하나도 없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좋은 친구가 없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어디까지나 이건 내 잘못이다.
언젠가는 더 늦기 전에 나의 이런 치부들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께, 나의 친구들에게, 나의 지난 인연에게 더 따뜻한 마음을 건네지 못했던 나의 차가운 무정함을, 나는 괴로워한다.
이런 나의 민 낯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은 겨우 몇 해 전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나라고 왜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나는 감정을 연기하고 싶지는 않다는 유치한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내 감정에도 적당한 연기가 필요하고 그게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당연한 도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많이 늦었을지 모르겠지만, ‘이타심은 이기심이지만, 이기심은 이타심일 수 없다’ 고 말한 황지우 시인이 말이 이제는 더 크게 와 닿기 시작했다.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한 자기 고백이다. 더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서 결국에는 친구를 갖기 못했고, 더 좋은 인연이 되어주지 못해서 결국에는 더 좋은 기억을 남겨주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좋아해 줬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인연에게 상처를 준 적이 많았다. 철학자 이진경 교수의 말처럼, 현실에서는 안타깝게도 더 많은 사랑을 베푼 쪽이 ‘연애의 게임’에선 늘 불리한 입장에 서기 마련이다. 언제나 덜 사랑하는 쪽이 유리한 것이 ‘연애의 게임’이다.
하지만 ‘사랑의 게임’에서는 난 늘 패자였다. 결국 인생에서 더 소중한 건 ‘사랑의 게임’ 임을, 언제나 패자였던 나의 무정함을 용서는 못하더라도 이해는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를 이해해주길.
마지막으로 나의 엄마 아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집에 생활비로 주기로 했던 20만 원을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드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쉽게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합니다.
2018. 12. 16.
비 내리는 피렌체의 어느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