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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덕후 Feb 24. 2019

인생의 Default

에세이#3

알랭드 보통은 그의 책을 통해 인생의 기본 값이 불행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얼마 전에 보게 된 '영혼의 미술관'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인생은 대개 나쁜 쪽으로 흘러간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면, 즉 좋은 관계란 생득권이라기보다는 일어나기 드문 경우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것을 당연시하게 된다. 행복은 당신이 아주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림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대개 이런 모습으로 흘러간다. 난파선에 매달리고, 아무것도 없는 바위일망정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순간의 안전을 구한다. 따라서 관계의 파탄, 그로 인한 상심은 상궤를 벗어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상심의 고통은 의미가 달라진다. 상심은 부당하게 당신을 겨누어 날아온 잔인한 일격에서 일반적인 경험으로 바뀐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뭐가 어려울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주 자신이 특별히 불운한 사람이고 다른 모든 사람이 누리는 듯 보이는 행복에서 부당하게 밀려났다는 은밀한 믿음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로 인해 슬픔이 끔찍이 배가된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이야기를 너무 오랫동안 들어오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을 정도로 익숙해지고 말았다. 이런 사실 때문에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인생의 Default 값이 무엇인지에 대한 알랭드 보통의 사유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인생의 기본 값이 사실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라는 생각은 비단 알랭드 보통만의 독특한 사고라고는 보기 힘들다. 불교야 말로 오랜 시간 동안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의 연속이라고 주장해왔다. 생이란 고통스럽기 때문에 윤회를 멈추고 극락의 세계로 가는 것이야 말로 궁극의 선이라고 말이다.


돌아보면 나도 늘 삶은 불행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나의 유년기의 나의 삶은 그리 넉넉하지만은 않았다. 다소 부족한 환경에서 부족한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그런 나의 삶이 결코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냥 원래 삶이란 이런 거니까. 유복해 보이는 저 친구들은 단지 운이 엄청나게 좋았을 뿐이야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란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내 삶이 내 주위 사람들의 삶보다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고 하더라고 그건 내 삶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행복한 삶을 누릴 만큼 운이 특별히 좋았을 뿐이다. 삶이란 원래 불행으로 수렴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니까.


우리의 삶이 생각한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낙담할 것은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낙담할 것은 없다. 재수 없게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고 해도 크게 낙담할 것은 없다.


원래 삶이란 그런 거니까.


이렇게 불행한 일들로 채워지는 게 당연한 삶 속에서 어느 날 기적처럼 행복한 순간들이 찾아온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면, 머지않아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나 더 큰 슬픔 속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관성의 법칙대로라면 계속 불행할 수 있었던 내 삶에 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는 행복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는 건 말 그대로 기적일 것이다.  


오래 지속되지 않고 소멸해 버린다고 해도 행복의 순간들이 가끔씩 찾아온다면,

비록 불행이 더 많은 시간을 상주하는 삶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인생의 기본 값을 불행으로 두고,

아주 가끔 행복이 찾아왔을 때 그 행복이 얼마나 예외적이고 소중한 것인지를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럼 인생이 대체로 불행하다고 해도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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