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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덕후 Jan 09. 2019

카페 모리히코 Cafe Morihiko

일본 카페 투어 #1

https://youtu.be/dO825V5dRfw

 나는 지금 인천공항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항공사에는 다양한 직군(일반직, 캐빈, 운항 승무원, 정비직, 공항서비스직 등)과 다양한 업무가 존재한다. 나는 본사에서 근무하다 우여곡절 끝에(사실은 아주 복잡하고 부끄러운 사연 끝에) 내가 가장 근무하고 싶어 했던 공항으로 발령을 받았다. 365일 휴일이 없는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스케줄 근무’를 하고 있다.


 스케줄 근무라는 것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노멀 근무(우리는 그렇게 부른다)’보다 선호하는 편이다. 평일에 여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도 여행을 다니기에는 스케줄 근무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저렴하게 비행기를 이용하는 대신 우리는 언제나 스탠바이 Stanby 상태로 공항에 나간다. 말하자면 항공편에 판매되지 않고 남아있는 빈 좌석이 있을 때만 직원이 탑승할 기회가 생기는 구조다. 모든 계획을 다 세우고 도쿄에 가는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에 갔다가도 예상치 못하게 좌석이 판매되어 만석이 되면 갑작스럽게 오사카로 가야 할 수도 있다(이미 짐을 다 싸서 공항에 나갔으므로 집에 돌아오기보다는 자리가 남아있는 어디로든 떠나는 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남들이 놀 때 일하고 남들이 일할 때 여행 다니는 것이 유리하다. 예를 들면 추석 연휴에는 사실상 모든 좌석이 판매되기 때문에 추석 전 주에 여행을 계획하면 수월한 식이다.


 18년 4월 첫째 주의 월, 화, 수 3일을 연달아 쉬는 스케줄을 받았다. 이렇게 3일을 쉬는 스케줄이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우연하게 나오게 되면 왠지 집에 그냥 있기엔 너무 아쉽다. 역마살이 낀 걸까. 본래 집에 오래 붙어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인간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머무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파스칼-
 


 비록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만, 난 사실 다행히도 그리 불행하지는 않은 것 같다. 뭐 유명한 사람들이 한 말이라고 다 진리는 아니니까(라고 위로해본다).

 

 멀리 가기엔 조금 피로하고 가까운 곳으로 짧게 다녀와서 나머지 하루는 쉬기로 했다. 어디로 떠나면 좋을까? 삿포로! 그래 삿포로가 궁금하다. 마침 작년부터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삿포로 노선에 취항을 시작했으니 편안하게 직항으로 갈 수도 있어 주저할 것이 없었다. 맥주가 유명하다는 것, 얼음을 조각하는 축제가 있다는 것, 홋카이도에 속해있고 근처엔 유명한 온천 지역이 있다는 것. 딱 이 정도 밖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삿포로의 면적은 약 1,126 평방 킬로미터. 삿포로의 인구는 약 1,963,626 명



 삿포로의 면적은 1,121 평방 킬로 미터로 서울의 약 2배의 달하지만 인구는 약 2백만 명으로 서울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인구밀도가 낮다는 뜻일 테니 여타 일본의 도시들보다 훨씬 한적하지 않을까?(결과적으로 기대대로 였다.)


 공항으로 나가 표를 받아 출국장을 통과하여 에어 사이드 Air Side(면세구역) 쪽으로 들어갔다.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인천공항 마티나 라운지 Martina Lounge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인천공항에는 여러 회사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항공사에서 운영하는 비즈니스 라운지, 인천 국제공항공사에서 운영하는 CIP 라운지, 그리고 이 마티나 라운지와 같이 호텔 체인(워커힐)에서 운영하는 곳도 있다.


 마티나 라운지는 간단한 뷔페식으로 제공되는데 공간도 그리 크지 않고 음식의 종류도 다양한 편은 아니다. 다만 그 퀄리티가 다른 라운지에 비해서 늘 만족스럽다.



마티나 라운지에서 간단한 뷔페식 식사를


FYI : 이런 라운지들은 돈을 내고 입장을 하게 되면 통상적으로 30달러의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의 스마트 컨슈머(?)라면 무료로 이용 가능한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카드사의 혜택으로 이용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가장 편한 것은 단연코 PP(Priority Pass) 카드다. 대부분의 신용카드 회사들이 하나쯤은 이 PP카드가 발급 가능한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다.  본인의 이용 빈도나 부가 혜택들을 잘 살펴보고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카드를 발급받으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의 빈도가 잦기 때문에 무제한으로 이용 가능한 PP 카드를 가지고 있고, PP 카드가 있으면 인천공항에 있는 대부분의 라운지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공항의 1,200여 개 제휴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단, 마티나 라운지는 음식이 맛있는 대신에 사실상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없다. 이에 비해 항공사들이 운영하는 비즈니스 라운지는 별로 먹을만한 음식이 없는 대신 샤워시설, 안마의자, 넓은 휴게공간 등이 있으니 라운지에서 장시간 체류해야 할 경우에는 이런 곳을 이용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마티나 라운지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 후 비행기에 몸을 싣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창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구름은 언제나 경이롭다. 어렸을 때, 항상 “구름을 통과할 때 무엇이 보일까?” 하는 순진한 물음이 있었다. 그리고 20살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정답은 ‘아무것도 안 보인다’이다. 산타클로스도 없고 구름을 통과할 때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게 어른이 돼가는 통과의례라도 되는 걸까.


 대략 2시간 20분 정도의 비행을 마치고 삿포로 치토세 Chitose  공항에 도착했다. 우선은 시내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것이 때문에 곧장 카페 투어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카페 모리히코 Café Morihiko 였다. 오도리 Odori 역에서 전철로 3 정거장 떨어진 마루야마 공원 Maruyama Coen 역에서 약 10분 정도 걸으면 카페 모리히코를 만날 수 있다. 가는 길은 굉장히 한적하고 조용했다. 초두에 말했듯이 삿포로가 워낙 인구밀도가 낮은 도시다 보니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인적이 급격히 드물어진다. 이런 곳에 정말 카페가 있어?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도착했다.



오래된 목조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는 외관



 아주 오래된 목조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옆에는 장작이 지붕까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마치 산장에 온 느낌이랄까. 이곳은 노 머신 No Machine 카페이다. 흔히 말하는 에스프레소 Espresso 음료가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전기식 커피포트도 없이 가스 불에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왠지 너무 운치 있었다. 물을 팔팔 끓이면 100도를 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브루잉 커피 Brewing coffee에서는 보통 섭씨 90~95도 정도의 물을 사용한다.


 이 곳에서는 별도의 온도계가 없기 때문에 물을 팔팔 끓인 뒤 온도를 적절한 온도까지 낮추기 위해서 바리스타가 끓는 물이 담긴 주전자와 드립 포트 Drip pot 사이로 물을 2~3번 정도 왔다 갔다 하면서 온도를 낮춘다. 이 동작에도 일종의 쇼맨십이 가미되어 있는지 물줄기가 상당히 길어지도록 주전자와 커피포트의 간격이 아주 넓다. 커피는 융드립으로 내리고 있었다. 이 공간의 분위기와 인테리어라면 융드립을 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리스타가 아주 천천히 또 진지하게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아주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 2층 난간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음악도 공간에 착착 붙는다. 너무 시끄럽 지도 않으면서도 적당히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옆에 앉은 일본인들의 대화 소리, 1층에서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리는 소리, 그리고 사람이 지나다닐 때마다 목조 계단이 삐걱대는 소리까지. 마치 영화 일본의 어느 클래식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층에 앉아 1층의 바를 바라본 모습


 나는 마일드 블렌드 Mild Blend 커피를 주문했다. 정확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에티오피아 모카 Ethiopia Mocha 가 들어간 블렌딩이 들어간 듯했다. 여러 카페들을 돌아보니, 삿포로의 커피 취향은 대체로 커피콩을 강하게 볶은 다크 로스팅 Dark Roasting 위주인 것 같았다. 정말 다행인 것은, 대부분 다크 로스팅 위주의 원두 구성이지만, 나처럼 미디엄 로스팅 Medium Roasting 혹은 라이트 로스팅 Light Roasting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원두들도 구비가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첫 모금을 마셨다. 컵 노트 Cup Note 가 아주 선명하게 느껴지는 맛이었다.



딸기의 기분 좋은 산미와 달콤한 맛


 한 마디로, 딸기의 뉘앙스가 아주 강한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주 선호하는 맛이다. 사실 커피의 신맛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아직은 많다. 그런데 커피의 신맛은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선 마치 ‘커피의 참 맛’ 이라도 되는 것처럼 찬양받는다. 이 두 가지 견해 사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내 입엔 맛없다는데 왜 이게 좋은 거라고 강요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실 이 커피의 ‘신 맛’은 항상 논란의 주체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오니 버스 커피 편을 통해 다시 다루겠다)


 바리스타가 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인지 커피가 훨씬 더 향긋하게 느껴졌다. 딸기의 달콤함과 신맛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커피의 바디 Body 도 꽤나 단단했다. 후미에서 오는 씁쓸함은 딱 적당한 만큼만 머물다가 딱 떨어져 클린 컵 Clean Cup 도 상당히 좋았다.


창가 쪽 테이블

 

 

 아침이었기 때문에 커피만 먹기는 아쉬워서 케이크도 함께 주문했다. 케이크 메뉴가 전부 일본어로만 되어있어서 마치 뽑기를 하듯이 그림만 보고 하나를 골랐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일본은 어딜 가나 푸딩이 참 맛있는데, 이 케이크의 윗부분은 캐러멜 푸딩을 조금 더 단단한 질감으로 만들어 낸 듯한 맛이었다. 여기까지는 아주 평범했다. 그런데 그 아래에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시나몬에 절인 사과가 한 조각 들어있었다. 캐러멜 푸딩과 시나몬에 절인 사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가지가 만들어 내는 조합이 꽤나 신선했다.



커피와 케이크의 조합은 실패가 없다


 보통 이런 엔틱 한 느낌의 고풍스러운 카페는 대체로 주인들도 그에 걸맞은 세월을 견디신 분들이 많다. 그런데 이 카페의 두 여성 바리스타는 굉장히 젊은 느낌이었다. 이 두 분이 이 곳의 주인이었는지 아니면 고용된 직원이었는지는 나는 알 길이 없지만, 전자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유행만 추구하는 한국의 카페들과는 달리 이렇게 세월이 느껴지는 공간을 젊은 바리스타들이 이어받아 그 전통을 계속 이어가는 이런 모습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세대 간의 화합, 뭐 대단한 것이 꼭 필요하겠는가?


 커피의 맛은 물론 음악, 인테리어, 한적한 위치, 바리스타의 정성.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기회가 되다면 꼭 한 번 이 곳을 방문해서 내가 느꼈던 그 기분, 일본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한 그 기분을 꼭 느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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