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부터 난 부모님이 빚에 허덕이시고
그 빚이 다 커버린 나를 집어삼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만 했다
그런 나에게 부모님께서
무언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난 필요 없다고 손사래 쳤다
시력을 잃어가는지도 모른 채
어느새 물건들이 희뿌옇게 잔상처럼
보이는 걸 신기해하며 보내 던 어느 날
어머니가 은행 창구의 큰 달력을 가리키며
오늘이 며칠이냐는 그 말에 내가 답을 못 했을 때까지
나는 안경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못하였다
아마 그때의 난 안경이 무언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그렇게 난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아이
스스로 찾아서 알아서 하는 어른으로 커버렸다
대학 생활과 사회생활 직장 생활을 해 보니
내 결핍은 때론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
내 결핍을 이용하고 활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회사에서는 내가 한 일을
자신의 실적으로 둔갑시키는 사람들이
15년간 나를 팔아 승진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어느 날 너무 헛헛한 나머지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너무 허겁지겁 먹어버려
소화불량과 만성 식도염을
달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싫었다
내 결핍을 이용하여 자신의 잇속을 채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1차원적인 생각이었다
나 또한 그걸 즐기고 있었다
유년 시절부터 세뇌된 기억의 회로 속에서
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없는 형편에 알아서 잘하는 것이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일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은 내가 불러들인 것이다
누구를 탓하는 건 제일 쉽다
문제는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