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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잃은 대화

폴리스적 동물

by Bird

사람은 홀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관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한눈의 마주침,

그 미세한 공감의 떨림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확인한다.


인간은 본래 관계적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이라 불렀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세계-내-존재’*라고 말했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관계가 사라지면,

자아도 서서히 희미해진다.


소통의 과잉 속에서 우리는 왜 외로운가


지금의 시대는 겉보기엔 소통의 시대다.

SNS, 메신저, 화상회의, 그리고 이제는 ChatGPT까지

언어는 넘쳐나지만, 마음은 점점 닿지 않는다.


사람들은 질문을 던지되, 사람에게 던지지 않는다.

대화는 이어지지만, 공감의 체온은 사라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혼자 말하는 사회적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ChatGPT는 파멸의 징조일까, 새로운 거울일까


ChatGPT는 우리의 궁금함을 신속히 해소해 준다.

그러나 그건 지식의 차원일 뿐,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외로운가’ 같은 존재적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AI는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게 아니라,

우리가 관계를 포기할 때 인류는 스스로 붕괴한다.


ChatGPT는 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대화의 온도를 비추는 거울일지 모른다.


관계의 회복이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기술이다


진짜 관계는 느리고 불편하다.

오해가 생기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배운다.


AI는 대화의 도구일 뿐,

관계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AI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AI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 사이의 대화의 본질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것은 ChatGPT가 아니다.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잃어버린 인간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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