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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로 연결되는 시대

기술 시대의 소통 상실

by Bird

도시는 늘 밝았다.

밤하늘의 별보다 스마트폰 화면이 더 선명하게 빛나는 시대.


윤서는 매일같이 수백 개의 메시지를 받았다.

업무 알림, 친구들의 단톡방, SNS 댓글, 좋아요 알림.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하루는 누군가의 말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많던 말들 사이에서 윤서는 점점 더 고독해지고 있었다.


말이 넘치면 마음이 줄어든다


퇴근길 지하철.

사람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윤서 역시 화면만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했다.


그때, 오랜만에 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요즘은… 잘 지내니?”


대학 시절, 가장 많이 이야기 나눴던 친구 지후였다.

그는 SNS도 하지 않고, 단톡방에도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끝없이 소통하는 시대에 유독 ‘조용한’ 존재였다.


윤서는 답장을 쓰려다, 잠시 멈칫했다.

지후와의 대화는 늘 느렸고,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 속에 진심이 있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오래된 카페의 낡은 탁자


며칠 뒤, 둘은 대학 근처 작은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건 거의 5년 만이었다.


“그동안 많이 바빴지?” 지후가 조용히 물었다.

“응… 뭐, 그냥… 매일 정신없어.”

윤서는 습관처럼 웃어 보였다.


지후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근데 오늘 너, 좀… 피곤해 보인다.”


대단한 말이 아니었지만,

누군가 화면이 아닌 눈으로 자신의 피로를 알아봐 준다는 사실이

윤서에게는 낯설게 따뜻했다.


그들은 오래 이야기하지 않았다.

짧은 근황 몇 마디, 서로의 커피 온도를 묻는 사소한 말들.

그 모든 대화가 조용했지만, 이상하게 그녀의 마음을 채워주었다.


기술은 소통을 빠르게 했고, 우리는 마음을 천천히 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윤서는 하루 종일 울리던 메시지 알림 들을 꺼놓은 채 걸었다.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오늘 단 한 명과 깊게 연결되었구나.”


수백 개의 텍스트보다,

지후의 짧은 한마디가 더 큰 울림을 남겼다.


“요즘 너무… 말이 많았나 봐.”

윤서는 작게 중얼거렸다.


모든 사람이 말하고만 있는 시대.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시대.

그 속에서 진짜 소통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 느리게


며칠 뒤, 지후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오늘 바람 좋더라. 너도 잠시 쉬었으면 좋겠다.”


윤서는 그 메시지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짧지만, 깊었다.

빠르지 않지만, 정확히 마음에 닿았다.


그녀는 천천히 답장을 보냈다.


“그래. 나 이제 조금 느리게 살아보려고.”


그리고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잠시 화면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구름, 멀어지는 빛, 사람들의 발걸음.


그 모든 것들이

오래전 자신이 잃어버렸던 ‘소통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듯했다.


마음이 닿는 일은 언제나 인간의 속도로


기술이 아무리 사람들을 연결해도,

마음이 닿는 일은 결국 인간의 속도로 이루어진다.

느릿느릿, 불완전하고, 때로는 불편하게.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우리를 서로에게 데려다주는 진짜 길이었다.


윤서는 스마트폰을 천천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작은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는… 누군가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날 저녁,

도시의 빛은 여전히 밝았지만

윤서의 마음속에는 오랜만에

따뜻한 어둠—사람과 사람이 만나 탄생하는 그 고요함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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