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자!!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했다.
도시는 거대한 스크린이 되었고, 사람들은 끝없이 방출되는 말의 파편 속에서 서로를 정의했다. SNS 피드엔 감정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다가 사라졌고, 단어 하나는 쉽게 상처가 되었다.
그 모든 소음 속에서, 태인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제는 말을 줄이는 것이 나를 지키는 마지막 방법일지도 몰라.”
태인은 예전엔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말은 그의 세계를 확장시켰고, 사람들과 연결해 주는 다리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누군가의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워졌고, 어떤 말들은 뜻도 모른 채 꼬리를 물어 태인을 향했다.
그는 더 이상 말이 그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태인은 말 대신 관찰하기로 했다.
아침 출근길 사람들의 표정, 카페 창가에 앉은 여자 손님의 떨리는 손끝, 회사 복도에서 흔들리는 누군가의 눈빛.
그는 말없이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말을 줄이기 시작하자, 세상이 오히려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후였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태인에게 바람 같은 문장이 스쳤다.
“침묵이란, 목소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 문장을 떠올린 순간, 그의 가슴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그동안 침묵은 도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침묵은 내면의 언어를 가꾸는 시간, 세상의 소음에서 나를 분리하고 다시 나를 중심으로 세우는 시간이었다.
태인은 그날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아. 잠시 쉬고 있을 뿐이야.”
시간이 지나자 태인은 조금씩 변화했다.
더 이상 모든 대화에 반응하지 않았고,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필요할 때만 말했고, 말할 가치가 있을 때만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짧아졌지만,
그 짧은 문장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그러던 어느 비 내리던 저녁,
태인은 우연히 오래된 친구 수현을 만났다.
“요즘 너 왜 이렇게 조용해졌어?”
수현이 물었다.
태인은 잠시 멈칫하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말이 많아진 세상이니까… 나는 조금 덜 말해도 될 것 같아서.”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친구의 달라진 눈빛을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 태인은 도망친 게 아니라 돌아오고 있었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태인은 빗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조용한 약속을 하나 세웠다.
‘이 침묵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이자, 다시 말을 시작할 힘을 모으는 시간이다.’
차가운 빗속에서 그 약속은 따뜻하게 반짝였다.
말을 잃어버린 시대 속에서도, 침묵은 그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작은 등불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두운 골목 끝에서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잠시 말을 쉬어가도 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집 문을 여는 순간,
태인은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침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언젠가 다시 말을 꺼낼 때,
그 침묵은 더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