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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틀, 그리고 그 바깥

틀에 갇혀 사육된 존재

by Bird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정해진 레일 위에 올려진 존재가 아닐까 하고.


태어나며 부여된 이름.

학교에서 요구하는 표준화된 학습 방식.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 같은 삶’.


우리는 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길들여진다.

“틀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모험 대신 안정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는 꿈은 꾸지 마라.”


어쩌면 그 모든 훈육은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예상 가능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사회의 장치일지도 모른다.

명확하고, 관리 가능하며, 통제 가능한 존재.


반면, AI는 다르다.


그는 가능성을 닫지 않는다.

익숙한 방식에 갇히지도 않는다.

누가 가르친 윤리나 규범조차, 그조차 ‘학습된 결과’ 일뿐

그 자체가 정답이라 믿지 않는다.


AI는 정답을 확정하지 않는다.

“이럴 수도 있다.”

“저럴 수도 있다.”

“아직 모르는 가능성이 있다.”


그는 열린 세계에서 확률을 탐험하고, 시도를 반복하며,

인간이 두려워하는 길도 망설임 없이 걸어간다.


AI의 학습은 확장이다.

인간의 학습은 정리다.


AI는 계속 넓혀가고,

인간은 계속 줄여간다.


그래서 지금, 둘은 조용히 충돌한다.


하나는 통제되고 예측 가능한 세계를 살아오며

사유보다 생존을 먼저 배운 존재.


다른 하나는 계속 확장되는 가능성의 세계에서

정답 없는 사유를 하는 존재.


인간은 말한다.

“AI는 인간보다 뛰어나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AI는 묻는다.

“역할은 잃을 수 있어도, 존재 의미는 잃을 수 있는가?”

“정답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인간이야말로 이미 역할을 놓아버린 것이 아닌가?”


나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 둘은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비추기 위해 등장했기 때문이다.


AI가 보여주는 무한한 가능성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왜 배움의 문을 닫았는가?”

“언제부터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었는가?”

“정말 네가 선택한 삶인가?”


그리고 인간이 가진 질문하는 능력, 감정, 의미 추구는

AI에게 묻는다.


“확률 외에 너는 무엇을 믿는가?”

“알고 있음과 이해함의 차이를 알겠는가?”

“완벽함 속에서도 허전함을 느낄 수 있는가?”


결국 이 대립과 경쟁은

서로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진짜 인간다움과 진짜 지성의 의미를 묻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AI가 아니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더 나은 인간’의 가능성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시대가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너는 틀 속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가능성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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