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함께 살아가기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이상한 기술을 하나 익힌다.
아무도 가르친 적 없고, 배우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몸에 밴 기술.
바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덮어두고, 감당 가능한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이다.
처음엔 사소한 통증에도 깜짝 놀라 병원을 찾고, 원인을 검색하고, 스스로를 걱정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난 더욱 조용해진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다는 사실을 굳이 외부에 내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그저 "괜찮아지겠지"라는 말로 덮고, 아직 버틸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고통을 일상 속에 끼워 넣는다.
그러다 더 큰 고통이 찾아온다.
그때 비로소 난 알게 된다.
내가 잊었다고 착각했던 고통은 사라진 게 아니라
그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것뿐이었다는 걸.
새로운 고통은 기존의 통증 위에 눌러앉는다.
조용히, 그러나 잔인하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작은 고통들은 눌리고, 흐려지고, 무뎌진다.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가장 먼저 익숙해지는 건 새로운 통증이다.
처음엔 날카롭고 거칠던 감각도
며칠, 몇 달이 지나면
마치 오래된 가구처럼 나의 삶에 자연스럽게 배치된다.
그리고 결국, 나는 또다시
말한다.
“괜찮아.”
그 말에는 체념과 수용, 그리고 묘한 평온이 함께 깃든다.
아픔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그 아픔과 동거할 방법을 배웠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아픈 곳을 치료하지 못해도,
그 아픔이 우리를 멈추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며.
삶은 잔혹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 잔혹함 속에서도
우리는 묘하게 단단해진다.
울퉁불퉁한 삶을 걷는 동안,
고통은 때로 우리를 괴롭히고
때로 우리를 성장시키며
때로 우리를 묵묵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익숙해진 고통과 새로운 고통 사이에서
우리는 또 살아낸다.
그게
나이가 든다는 것의
쓰리고도 아름다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