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 없던 시대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어른들은 왜 아이를 낳았을까?

by Bird

마을 끝, 오래된 놀이터 벤치에 앉아 그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미끄럼틀을 오르다 말고 주저앉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더 올라갈 힘이 없는 것도,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닌 듯했다. 그냥 더 오를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어른들은 어떻게 우리를 낳아 길렀을까.


그 시절의 집은 작았고, 방은 추웠으며, 식탁 위 반찬은 늘 비슷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을지 말지로 밤을 새워 토론하는 어른은 없었다. 아이는 계획이 아니라 순서였다. 결혼을 하면 아이가 생겼고, 아이가 생기면 키웠다. 이유는 나중에 붙였다.


그의 어머니는 늘 말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말속에는 설명도, 설득도 없었다. 그저 전제였다. 가난해도, 불안해도, 아이는 태어났고 어른은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화를 냈으며, 누군가는 도망치고 싶어 했지만, 그럼에도 다음 날은 왔다.


동네는 하나의 몸처럼 아이를 키웠다.

누가 소리를 지르면 옆집 어른이 먼저 나왔고,

길에서 잘못을 하면 이름보다 혼나는 게 빨랐다.

부모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부족함은 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억했다. 넘어졌을 때 아무도 괜찮냐고 묻지 않았던 순간을. 대신 “일어나”라는 말이 먼저 날아왔다. 아팠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도 세상이 계속된다는 신호 같았다. 멈출 수 없다는 걸, 살아간다는 건 그런 거라는 걸 그때 배웠다.


지금은 다르다.

아이의 넘어짐 하나하나에 이유를 찾고,

상처가 될까 말을 고르고,

부족함마저 설명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를 낳기 전에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실패 사례, 통계, 미래 전망, 기술이 대체할 직업 목록까지. 그래서 묻는다. 이 아이가 태어나도 되는지, 이 세계가 감당할 만한지, 내가 책임질 수 있는지.


그는 고개를 들어 아이를 불렀다.

“미끄럼틀 안 탈 거야?”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 말이 묘하게 가슴에 걸렸다.

예전에는 ‘굳이’라는 질문이 없었다. 해야 했고, 그래서 했고, 그러다 보면 의미는 나중에 생겼다. 지금은 의미가 먼저 필요하다. 납득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과거의 어른들은 아무것도 없어서 아이를 키운 게 아니었다.

의심이 없어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불완전해도 괜찮은 사회,

부족해도 용납되던 기준,

책임이 한 사람에게 몰리지 않던 시대.


그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

지금의 어른들은 아이를 낳기 전에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다.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한 번만 더 타보자.”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잡았다.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는 동안, 그는 생각했다.


우리는 질문하지 않았기에 태어날 수 있었고,

질문하기 시작했기에 망설이게 되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의 어른들은

미래를 믿어서 아이를 낳은 게 아니라,

살아야 했기 때문에 아이를 길렀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살아가는 것보다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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