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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대체하는 사회

고용 없는 성장

by Bird

요즘 세상은 사람보다 기술이 먼저 준비된다. 느리게 배우는 인간을 기다려주기보다, 이미 완성된 시스템을 들여오는 쪽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조용하지만 분명하다. 그리고 그 틈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는 존재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결핍 없이 자란다. 불편함은 빠르게 제거되고, 실패는 보호받는다. 하고 싶은 것이 없어도 괜찮고,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그러나 이 풍요는 아이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 대신, 견뎌야 할 이유를 빼앗았다. 욕망은 결핍에서 자라는데, 결핍이 없는 사회는 욕망을 키우지 못한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언젠가 사회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사회, 특히 조직은 학교가 아니다. 조직은 사람을 가르치지 않는다. 조직은 성과를 요구하고, 결과를 책임지게 한다. 협동하지 못하는 사람, 고집이 센 사람, 모든 규칙에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은 조직에 부담이 된다. 예전에는 그 부담을 감수하며 사람을 길렀다. 지금은 다르다.


기술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협업이 어려운 사람 대신 자동화된 프로세스가 들어오고, 감정에 흔들리는 인간 대신 항상 같은 품질을 내는 시스템이 배치된다. 기술은 불평하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조직 입장에서 이는 잔인함이 아니라 효율이다. 기술은 인간을 밀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약점을 가장 정확히 찌르기 때문에 선택된다.


그 결과, 사회는 사람을 바꾸는 대신 사람을 필요 없게 만든다. 준비되지 않은 개인은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실업은 더 이상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과 개인이 갖춘 역량 사이의 간극이 고착화될 때, 실업은 구조가 된다.


아이들에게 문제를 묻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너는 소중하다”는 말은 반복했지만, “너는 대체 가능하다”는 현실은 숨겼다. 세상은 개인의 감정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술은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노력의 서사도, 성장의 맥락도 기술 앞에서는 의미를 잃는다. 남는 것은 결과뿐이다.


기술이 대체하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기술보다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기술 옆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불편함을 견디고, 규칙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자아를 잠시 접을 수 있는 사람. 질문보다 실행을 먼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술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사람만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사회가 아이들에게 건네야 할 말은 위로가 아니라 경고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회사는 학교가 아니며,

기술은 인간의 사정을 이해하지 않는다고.


이 불편한 진실을 일찍 마주한 사람만이,

기술이 대체하는 사회에서 대체되지 않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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