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낸 사람들

침묵의 힘

by Bird

그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회의에서 가장 먼저 말하지도 않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고 생색을 내지도 않았다. 다만 늘 자리에 있었고, 맡은 일은 끝까지 가져갔다. 조직이 요구한 건 그것뿐이었고, 그들은 그 요구를 정확히 이해했다.


민수는 처음부터 버틸 생각으로 들어온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충분히 똑똑하다고 믿었고, 설명받지 않아도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질문은 권리라고 배웠고, 이해 없는 지시는 폭력에 가깝다고 여겼다. 첫 해 평가는 나쁘지 않았지만, 두 번째 해부터 기록이 남기 시작했다. “협업 리스크”, “실행 지연”, “과도한 문제 제기.”


어느 날 그는 알게 되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기다려 주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날 이후 그는 질문을 줄였다. 아니, 질문을 접었다. 대신 메모를 남기고, 혼자 답을 찾았다. 억울함은 퇴근길에만 허락했다. 집에 돌아와 불을 켜지 않은 채 한참을 앉아 있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다음 날이면 다시 출근했다.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여기서 밀리면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지연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이 맞지 않는 공간에 들어왔다는 걸 느꼈다. 말수가 적었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도 크지 않았다. 대신 기준을 빨리 파악했다. 여기서는 공감보다 결과가 중요하고, 설명보다 완료가 우선이라는 것. 그녀는 감정을 아끼기로 했다. 필요 없는 곳에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퇴근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숨이 찰 때까지 달리면, 낮에 삼켰던 말들이 조금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들을 “적응한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적응이라는 말은 너무 가볍다.

그들은 매일 자신을 조정했고, 매주 기준을 재확인했으며, 매년 한 번씩 ‘여기를 떠날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또 남았다.


조직은 그들을 칭찬하지 않았다. 대신 더 많은 일을 맡겼다. 더 복잡한 상황, 더 애매한 책임.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불평이 기록이 된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대신 조용히 처리했다. 그 조용함이 조직을 굴러가게 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오래 버텼어요?”


민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버틴 게 아니라… 포기할 걸 정확히 골랐을 뿐이에요.”


지연은 웃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저는요, 여기가 전부가 아니라고 매일 말해줘요. 그래야 내일도 올 수 있거든요.”


그날 밤,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도 그들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조직은 아무 문제 없이 다시 돌아갔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텨낸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다만 무너지지 않게 받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조용한 버팀 위에서,

이 시대는 오늘도 간신히 하루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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