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방법
그는 늘 조용했다.
아픈 날에도, 불안한 날에도, 말수가 늘어나는 법이 없었다. 다만 하루의 리듬은 어김없이 지켰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회사로 향했다. 내가 항암치료로 잠들어 있을 때도 그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마치 멈추면 무너질 것이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공무원이다.
입사한 지 십여 년, 이제 6급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눈앞”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거리다.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보고서를 다듬는다. 승진이라는 게 능력의 보상이라기보다는 버텨온 시간의 증명이라는 걸, 나도 이제 안다.
신혼 초에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그가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떠나 주길 바란 순간도 있었다. 내 병이 그의 삶을 망가뜨릴까 봐. 그런데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대신 결심했다. 그 결심은 말이 아니라 생활로 나타났다.
회사를 다니며 박사과정을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미래를 대비해야지.”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는 낭만도 위로도 없었다. 다만 현실을 정면으로 보는 사람의 어조였다. 낮에는 조직의 톱니로 일하고, 밤에는 학문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틈틈이 운동을 했다. 병실에서 돌아와 땀에 젖은 채로 서 있는 그의 등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이 사람은 강해지려고 운동하는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운동하고 있구나라고.
그는 조직 안에서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승진에 목을 매지 않았고, 정치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는 달랐다. 업계 세미나에서, 강연장에서, 자문회의에서 그는 ‘전문가’로 불렸다. 누군가는 그를 보고 “왜 저런 사람이 조직 안에서는 저평가될까”라고 말했지만, 나는 안다. 그는 조직에 인정받기보다 자기 삶에 책임지기로 한 사람이라는 걸.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것도 그 선택의 연장선이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아이를 낳자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삶은 만들지 말자.”
그 말은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그 안에서 깊은 윤리를 느꼈다. 그는 미래를 낙관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성실했다.
내가 6급 승진을 위해 밤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그는 묻지 않는다. “힘들었어?” 같은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식탁 위에 따뜻한 음식이 놓여 있고, 세탁기는 돌아가 있다. 우리 부부의 대화는 짧지만 정확하다. 서로가 무엇을 버티고 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어느 날 거울 속 그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몸은 단단해졌고,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성공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강한 사람을 영웅처럼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본 강함은 다르다.
그는 세상을 바꾸지 않았고, 조직을 뒤집지도 않았다.
다만 아픈 아내를 떠나지 않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일 자신을 단련했고, 말없이 자신의 몫을 감당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승진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겠지만,
오늘도 버티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는 조용히 강한 남자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