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인간

덧없는 약속

by Bird

그날 동물원에는 늑대가 새로 들어왔다.

다리를 저는 늑대였다.


사육사는 설명했다.

무리에서 떨어졌고, 혼자서는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아이들은 안도한 표정으로 늑대를 바라봤다.

그래도 여기서는 살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 말했다.

나는 유리 너머 늑대의 눈을 보았다.

그 눈에는 억울함도, 수치도 없었다.

그저 “여기까지”라는 체념만이 있었다.


그날 밤, 구룡마을에서 불이 났다.


빈집에서 시작된 불이었다고 했다.

사람이 안 살았으니 다행이라는 말이 먼저 흘러나왔다.

하지만 불은 주소를 확인하지 않았고,

허가 여부를 묻지도 않았다.

판잣집들은 서로를 밀고 당기며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타올랐다.


소방차는 도착했지만,

물은 쉽게 뿌려지지 않았다.

접근이 어렵다는 말, 위험하다는 말,

규정이 있다는 말들이 불길 위를 떠다녔다.

불은 그 사이, 제 일을 묵묵히 해냈다.


사람들은 울지 않았다.

울면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여기 살았는지,

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는지,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한 노인은 불탄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있었다.

집은 사라졌지만

내일도 걸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남아 있었다.


누군가 물었다.

왜 피해를 숨기느냐고.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느냐고.


나는 낮에 본 늑대를 떠올렸다.

늑대는 무리에서 밀려났지만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약해졌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버려지면서도

동시에 책임을 요구받는다.

구조의 실패는 언제나

개인의 선택으로 번역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순간,

집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잘못 산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동물은 약자를 버린다.

그러나 동물은 보호를 약속하지 않는다.

인간은 보호를 말하면서

버리는 법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

서류로, 절차로, 침묵으로.


불이 꺼진 뒤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뉴스는 다음 사건으로 넘어갔고,

마을은 정비 예정 구역이 되었다.


며칠 뒤 다시 동물원에 갔을 때

늑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다리를 저는 채로,

그러나 부끄러움 없이.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인간 사회의 비극은

약자를 버리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버리면서도,

그들에게 스스로를 탓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불은 꺼졌지만,

그 연기는

아직도 도시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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