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바뀌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모자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특별히 게을러진 것도 아니고, 어제보다 덜 성실해진 것도 아닌데, 세상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어제까지 평범했던 속도가 오늘은 느림이 되고, 익숙했던 능력은 어느새 구식이 된다.
잘못한 적이 없는데,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이 따라온다.
기술은 쉬지 않고 앞으로 달린다.
그것도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묻지 않은 채. 몇몇 빠른 사람들의 보폭이 곧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은 사회 전체를 끌고 간다.
그 순간,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 잘못 없이 뒤에 남는다.
뒤처진 것이 아니라, 기준선이 이동했을 뿐인데도 결과는 같다. 우리는 ‘하위’가 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가장 잔인한 건 격차 그 자체가 아니다.
격차에 붙는 낙인이다.
“요즘 세상에 그 정도도 못 해?”라는 말은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판결이다.
기술의 가속이 만든 구조적 차이는 설명되지 않고, 개인의 태도와 노력 문제로 단순화된다.
그렇게 사회는 편해지고, 사람은 외로워진다.
이제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되었고, 쉼은 회복이 아니라 도태의 징후처럼 보인다.
안정은 미덕이 아니라 정체로 오해받는다.
기술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정작 인간은 기술을 따라잡느라 사람일 시간을 잃어버렸다. 숨을 고르는 순간에도 뒤처질까 봐 마음이 먼저 달린다.
그래서 요즘의 평범함은 머무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잠시 스쳐 지나가야 할 지점이다. 멈추는 순간, 그 자리는 곧 ‘모자람’이라는 이름으로 재분류된다. 성실해도, 최선을 다해도, 인간은 언제든 부족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이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문제는 우리가 느린 것이 아니다.
느린 인간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다.
기술은 계속 진보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그 간극에서 사람은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부족한 걸까?”라는 질문은 그렇게 생겨난다.
나는 이제 안다.
이 불안은 나의 무능에서 온 것이 아니다.
세상이 더 이상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로 결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이 속도 속에서도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지 않는 일이, 오늘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저항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