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진실

by Bird

금융권에서 일하다 보면 묘한 감각을 배우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일수록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회의실에는 늘 거창한 단어들이 떠다닌다.

AI, 블록체인, 디지털 전환, 자동화.

슬라이드에는 미래가 있고, 조직은 언제나 혁신을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미래를 실제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지 않게 된다.


금융에서 기술은 늘 조심스럽다.

기술은 가능성을 넓히지만, 동시에 통제의 경계를 흐린다.

설명이 길어지고, 맥락이 필요해지며,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한다.


금융은 그런 상태를 불안해한다.

불안은 곧 리스크가 되고,

리스크는 제거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기술은 변형된다.

코드는 문서가 되고,

설계는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평평해진다.

결국 기술은 작동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금융이 기술을 대하는 가장 솔직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진짜 기술자는 조금씩 불편해진다.

그는 문제를 보고, 원인을 알고, 해결책을 떠올린다.

그리고 가끔, 너무 쉽게 답을 말해버린다.


그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그럼 지금까지는 왜 이렇게 해왔을까?”

아무도 묻지 않지만, 모두가 떠올리는 질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행위는

의도치 않게 과거를 평가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해결책은 늘 환영받지 않는다.


기술자는 점점 말을 줄인다.

혹은 말을 바꾼다.


금융권에서 오래 살아남은 기술자들은

기술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능성과 선택지,

그리고 판단의 주체를 분리한다.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리스크를 감안하면 이쪽이 더 안전합니다.”

“결정은 조직이 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그들은 알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정답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것을.


그래서 금융권에는 묘한 역설이 생긴다.


잘 드러나는 기술자는 위험해지고,

조용한 기술자는 신뢰받는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문서 뒤에 숨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구조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구조는 언제나 개인보다 강하다.


결국 살아남는 쪽은

스스로를 희미하게 만든 사람들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금융권에서 유능하다는 평가는

능력의 증명이 아니라

흔적을 남기지 않는 능력에 대한 칭찬일지도 모른다고.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누가 해결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상태.

기술은 작동하지만

기술자가 떠올려지지 않는 순간.


그때 비로소 조직은 안심한다.


그래서 금융권에서 기술자는

빛나기보다 스며든다.

앞에 서기보다 뒤에 남는다.

이름을 남기기보다 구조가 굴러가게 만든다.


그 길은 분명 외롭다.

그리고 종종 허무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보이지 않음 속에서만

이 세계에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에서

시스템은 조용히 돌아가고,

기술자는 보이지 않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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