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건가?
어느 순간부터 회의실에는 기술자가 사라지고,
기술 이야기는 더 많아졌다.
AI를 말하는 사람은 늘었지만
모델을 다룬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블록체인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커졌지만
합의가 깨졌을 때를 경험한 얼굴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술은 점점 중요해진다는데,
정작 기술을 손에 쥔 사람은 점점 말이 없어진다.
기술이 없는 사람의 기술 이야기는
늘 가볍다.
그들은 가능성을 말하고,
방향성을 이야기하며,
사례를 인용한다.
조건은 빠져 있고,
제약은 흐릿하며,
실패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 말들은 틀리지 않는다.
다만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듣기 편하다.
그리고 위험하다.
반대로 진짜 기술자는
말을 아낀다.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수십 개의 전제를 정리하고,
혹시나 오해될 지점을 미리 지운다.
그 과정이 길어질수록
그는 점점 조용해진다.
설명은 늘 책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 세계에서는 이해보다 설명이,
설명보다 태도가,
태도보다 분위기가 중요해졌다.
기술은 논리가 아니라
연출의 일부가 되었다.
누군가는 기술을 쓰고,
누군가는 기술을 말한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이
늘 앞에 선다.
기술 없는 사람의 말에는
이상할 정도로 책임이 없다.
안 되면 “시기상조”가 되고,
틀리면 “방향성은 맞았다”가 된다.
그 말들은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할 수 없도록 말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기술자는
하나의 선택을 말하는 순간
모든 경우의 수를 떠안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 세계는
기술을 아는 사람보다
기술을 믿게 만드는 사람을
더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그 믿음이 틀렸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니까.
사기꾼이라는 말은
조금 과할지도 모른다.
그들 중 대부분은
속이려는 의도가 없다.
다만 모른 채 말하고,
말한 뒤에는 잊는다.
하지만 의도가 없다고 해서
결과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기술이 없는 사람이 기술을 말할 때
시스템은 조용히 어긋난다.
그래서 오늘도
진짜 기술자는 말이 없고,
말이 많은 사람은
늘 기술을 말한다.
그리고 세상은
그 목소리 쪽으로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아마도 이 세계에서
가장 값싼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직함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