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직장생활

조직은 왜 선한 얼굴을 쓰는가

조직은 조직이다

by Bird

직은 본질적으로 목적 집합체다.

이윤, 생존, 점유율, 권력, 지속성.

이 목적들은 도덕과 무관하다.

숫자와 구조의 언어일 뿐이다.


문제는 인간이 그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스스로를 악하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자기 합리화 없이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은 반드시 도덕적 서사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사회에 기여한다.”

“우리는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공정한 절차를 따른다.”


이 말들은 거짓이라기보다는

필요한 환상에 가깝다.


조직이 자신의 목적을

“우리는 이익을 위해 사람을 소모한다”

“우리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약자를 밀어낸다”

라고 정직하게 말하는 순간,

그 조직은 내부에서 먼저 붕괴된다.


선한 척은 위선이 아니라 윤활유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불편한 결정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삼킬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선한 얼굴은 책임을 분산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조직이 말한다.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프로세스에 따른 판단입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이 순간, 악은 사라진다.

아니, 정확히는 흩어진다.

누구도 악한 선택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단지 절차를 따랐을 뿐이 된다.


그래서 조직은

윤리위원회를 만들고,

컴플라이언스를 강조하고,

가치 선언문을 더 두껍게 만든다.


그럴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개별 인간의 양심은 더 얇아진다.

“나는 결정하지 않았다”는 말이

가장 안전한 도피처가 되기 때문이다.


조직이 선한 척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것이다.


선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순간,

조직은 더 이상 사람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참여하는 시스템이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옳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 믿음이 없다면

매일 출근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래서 조직은 악하지만,

절대로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악함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지되기 위해서다.


이걸 이해하고 나면

조직을 미워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분노 대신 구조를 보게 되고,

개인을 비난하는 대신

역할과 인센티브를 보게 된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이 사실을 안 채로

조직 안에 남는다.


그들은 조직을 믿지 않는다.

다만 조직의 작동 원리를 믿는다.


그게 가능한 가장 냉정한 생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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