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성의 계산

완전함의 욕망

by Bird

나는 쉰 살이 되었다.

그리고 내 삶에는 아이가 없다.


젊었을 때부터 나는 삶을 하나의 계산처럼 살아왔다.

세상은 너무 많은 변수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변수들은 대부분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씩 그것들을 제거하려 했다.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망가졌다.

돈 때문에 싸웠고,

자식 때문에 울었다.


나는 그 모든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한 한 불완전성을 줄이며 살자.


직장은 안정적인 곳을 골랐다.

투자는 무리하지 않았다.

관계도 깊어지기 전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삶에서 가장 큰 변수 하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였다.


아이는 삶에 가장 큰 불확실성을 가져온다.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어떤 인생을 살지, 어떤 고통을 겪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이 변수는 제거하자.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통제였다.


처음에는 그 선택이 꽤 합리적으로 보였다.


내 삶은 조용했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고,

예측 가능했다.


주말에는 늦게까지 잘 수 있었고,

누군가의 미래를 걱정하며 밤을 새울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은 가끔 묻곤 했다.


“후회 안 해요?”


나는 늘 웃으며 대답했다.


“삶은 선택이니까요.”


하지만 쉰 살이 되고 나서 문득 이상한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삶은 분명 안정적이었다.

그런데도 어딘가… 빈 것 같았다.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아이가 넘어졌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잠시 후 아버지가 달려와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의 무릎에는 흙이 묻어 있었고,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장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 삶은 불완전성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살면 살수록 삶은 여전히 불완전한 것들로 가득했다.


관계는 여전히 어긋났고,

일은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았고,

마음은 여전히 흔들렸다.


나는 그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 나는 그동안

불완전성을 없애려 했던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조금씩 줄여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지 않은 선택이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건 여전히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삶은 계산처럼 정리되는 것이 아니었다.


변수를 줄인다고 해서

삶이 완전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벤치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삶은

불완전한 것들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고.

매거진의 이전글침대 위의 소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