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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형준 Jul 05. 2018

삶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뜻하지 않은 여름 방학이 찾아왔다

학창 시절, 여름이 되면 즐거운 방학이 찾아오는 것이 좋았다. 방학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뜻깊게 보낼 수 있을지 보다는, 어떻게 하면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괴롭힐 수 있을지 더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방학 계획서를 숙제로 내는 것만 빼고. 그 당시에 나는 30년 넘게 배우고 있는 영어를 방학 동안 마스터하겠다고 호언장담 했었다. 결국 지키지 못하면 완벽한 스케줄도 아무짝에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7월, 뜻하지 않게 여름 방학이 찾아왔다. 더위 먹기 적절한 여름에 마음먹었던 퇴사다. 마음속 호주머니에 비밀번호까지 걸어두고 절대 꺼내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퇴직서를 회사에서 들이 밀어주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실 몇 달 더 버티면 2년을 채울 수 있었기에 조금은 아쉬웠지만.


막상 기한 없는 휴가를 선물 받으니 뭘 해야 할지 몰라 조금 난감하기는 하다. 여행 가서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고 하면 좋으련만, 나이가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아니다. 나이라기보다는 마음이 걸렸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찬 아들을 보며 지을 어머니의 못마땅한 한숨이 떠올랐다.


돈을 벌어서 열심히 모았으면 벌써 집을 한 채 샀을 것이라 말씀하시는 어머니에게 유럽을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체념하신 듯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깊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죄송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 모순적인 감정도 잠시 나는 인터넷으로 정보 찾기에 몰두했다. 자식 키워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순간이 어머니에게는 지금일 것이다.


아날로그부터 디지털까지, 전두환부터 문재인까지 혁명이란 혁명은 다 겪은 세대지만, 내 삶 가까이에 있진 않았다. 오히려 내 삶은 평온할 정도로 잔잔했다. 대학에서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을 했고 돈을 벌었다. 글에 흥미를 느끼고 있을 때 글을 썼고 영상과 사진에 빠져 있을 때 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좋아하는 일에는 금전적인 대가가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많은 돈을 벌진 못했지만 만족할만한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신념이 있었는데, 막상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타고나거나 배운 능력이 도움이 되지 않고 딱히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잠시 나는 무너졌다. 지금까지 지켜온 나의 신념과 믿음이 흔들리는 슬럼프를 겪었다. 밑도 끝도 없이 자신감과 자존감이 아스팔트 너머 내핵까지 밀려났을 때, 나는 30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나의 30대는 그렇게 찾아왔다. 아직 철이 덜 든 소년이 이제 막 사랑을 배우듯 자본주의 사회를 3년이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습득하려니 구역질이 났다. 회사에 다니면서 얻은 휴가는 놀러 가긴커녕 집 안에서 멍하니 앉아있기 일쑤였고, 출퇴근 시간 틈틈이 공부하겠다던 다짐은 조금만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졌다.


착함, 성실, 정직 등등으로 포장된 나의 모습을 깨뜨리고 난 절대 착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발설하기 까지 나는 힘겹게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내 삶이 예상대로 순탄했던 것은 어쩌면 억지로 얼굴에 눌러쓴 가면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아직 세상에 남아있다. 남아있기 위해서 내가 나로 온전히 살아남기 위해 해야 했던 것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던 허세라는 이름의 다양한 행위들을 내려놓기로 했다.


불안하다. 여전히 난 불안하다.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라는 선인의 말씀에 시야를 조금 넓히면, 공중에 가득한 미세먼지만큼이나 뿌연 나의 미래가 떠오른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이 세계에서 나는 어디로 걸음을 이어나가야 할까?


다양한 고민이 혼재한 상황에서 나의 자존감은 회복되고 있고, 자신감은 성장하는 중이다. 삶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어제보다 더 침착하고 신중한 그리고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조금은 불안해도 괜찮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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