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유미 Dec 16. 2018

나를 쓰게 만든 것들 1

독립출판물 <피구왕 서영> 뒷 이야기 - 1. 피구왕 서영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갔었다. 이민을 간 것도 아니고, 고작 전학이었지만 이방인이 되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어느 날 갑자기 굴러 들어온 낯선 존재가 환대를 받고 마침내 수용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해야만 했다. 여러 관문은 하나씩 친절하게 열리지 않았고 모든 게 복합적이었지만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관문이 하나 있다.


“너네 집은 몇 평이야?”


내 기억 속 첫 번째 관문은 가정환경 조사였다. 아이들은 먼저 우리 집이 어디냐고 물었고, 내가 아파트의 이름을 말하자 이어서 몇 평이냐고 물었다. 이어진 질문은 부모님의 직업이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는 70년대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권위주의로만 똘똘 뭉친 전형적인 나쁜 어른, 즉 꼰대가 달고 사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 사이에서 더 흔히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주제이다. ‘누구네 아버지의 직업은 무엇이며, 누구네 집안이 부자라고 하더라’ 류의 이야기는 언뜻 어른의 주제인 것 같지만 오히려 천진한 아이들이야말로 거리낌 없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때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제야 왜 그런 질문에 거부감이 느껴졌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질문은 누군가에게는 듣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입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아직 폭력에 어느 정도의 굳은살이 채 박히기 전, 나름 순수했던 시절인 초등학생 때에 나는 그런 류의 폭력에 유난히 민감한 편이었고, 때문에 그 질문을 듣자마자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다. 교실은 가히 사회생활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폭력이 난무했다. 서로 육체적으로 치고받고 하는 폭력뿐 아니라 누가 지시한 일도 아닌데 강자부터 약자까지 피라미드 구조로 서열이 생기고, 항상 최약체로서 폭력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는 아이가 적어도 한 명씩은 있었던 건 학교생활 12년 동안 모든 학교, 모든 교실에서 목격한 일이었다.


특히 교실 내 폭력은 의외로 어리면 어릴수록 더 빈번하고, 잔인한 양상으로 나타났는데 중고등학교로 가면 갈수록 입시경쟁 때문에 각자 자기 문제에 빠져서 남한테 신경을 쓸 여력도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법적 성년을 코 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 때에도 반에 왕따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점점 나이가 많아질수록 적어도 눈에 띄는 못된 말들은 교실 내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다만 교우관계가 ‘나랑 같이 놀던가’ 아니면 ‘한 마디도 안 하던가’ 정도로 모두가 각자 내 사람과 아닌 사람 정도의 이분법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양상이었다.


때문에 오히려 나이가 어린 초등학생 때 매일 견뎌내야 했던 학교생활이야 말로 더더욱 큰 고난과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어려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다른 사람 마음에 비수를 꽂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어려서 무서운 게 많아서 또래 중에서 조금만 힘이 센 아이가 나타나도 그 애한테 복종하는 서열 문화에 그저 편입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이 겪는 공포의 학교생활과 미묘한 우정 관계를 잘 그린 영화가 있다. 독립영화 <우리들>에서는 초등학생이자 교실 내 왕따인 ‘선’이 학교에서 피구를 할 때 배제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금을 밟았다는 이유로 코트에서 나가라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12년 동안 내가 학교생활을 하며 목격했던 폭력, 그리고 특히 초등학생 때 전학을 다니며 느꼈던 ‘수많은 불편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미지 출처: 영화 <우리들>, 2016년 개봉 


벌써 20년 가까이 된 묵은 기억들이지만 잊히지 않았던 건 마음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폭력에 예민했던 편이지만 용기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던 작고 작은 쭈굴한(?) ‘초딩1’이었기 때문에 가장 안전하면서도 나쁘다고 손가락질받을 리는 없을 적당한 위치를 고수했다. 늘 한 명씩은 있었던 희생자 포지션이 되지 않기 위해 폭력을 방관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행동으로든, 말로든 악의를 품고 고의로 상처를 내는 행위가 나쁘다는 걸 잘 알았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민감한데 용기는 없어서 문제 상황들을 잘 피해나가는 걸 생존전략으로 택했다. 그렇게 방관자로 살아남았던 십여 년 가까이의 부끄러웠던 기억, 마음의 빚이 모여 언젠가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그건 꼭 학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첫 번째 단편소설집의 제목이자 표제작 이기도 한 독립출판물 <피구왕 서영>이 바로 그런 마음에서 쓰게 된 이야기이다. 사실 피구왕 서영을 ‘소설’이라고 소개해야 할지도 애매하다. 다른 단편과 다르게 유난히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 에피소드가 많이 모여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되어 겪은 사건들, 그리고 일부는 중학생, 고등학생 시설을 보내면서 교실에서 관찰한 인물과 직, 간접적으로 목격했던 여러 사건을 응축한 후 가공하였다. 실제와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 ‘서영’의 캐릭터다. 안전한 선택만 했던 지난날이 후회되어 서른이 되어서야 서영을 통해 ‘그때 이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고 묻게 되었다. 


12년의 모든 불편했던 순간을 열한 살짜리 초등학생이 단 몇 개월간 겪는 사건들로 뭉쳤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너무 숨이 가빠서 힘든 얘기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도 불편한 순간들을 굳이 모두 엮어 기록한 이유는 내가 쓴 이 한 편의 반성문이 박제되어 남아있어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것 같아서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쩔 수 없이 또 끝까지 이기적인 느낌인데, 누가 너는 글을 왜 쓰냐고 묻는다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마음 정리하려고 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다이기 때문에 겨우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냐고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도 더 꾸며낼 말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독립출판물 <피구왕 서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반성문을 쓰는 마음으로 내 모든 불편했던 순간들과 마음의 빚을 기록을 통해 내려놓기 위해 쓰게 된 게, 맞다. 


+ 학교 생활에서 벌어지는 집단 내 폭력, 긴장관계를 다룬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면 영화 <우리들>과 함께 <파수꾼>도 추천한다. <파수꾼>은 <우리들>과 영화의 톤은 많이 다르다. <우리들>이 끝내 희망을 얘기한다면 <파수꾼>은 끝내 절망을 얘기하는 느낌이랄까.

이미지 출처: 영화 <파수꾼>, 2011년 개봉




이 글은 독립출판물 <피구왕 서영>의 각 단편소설을 쓰게 된 개인적인 이유를 더듬는 기록물입니다. 총 여섯 편의 소설 뒤에 있는 이야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