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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Dec 29. 2018

나를 쓰게 만든 것들 2

독립출판물 <피구왕 서영> 뒷 이야기 - 2. 물 건너기 프로젝트

이름이 콤플렉스였던 한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단짝이었던 그 여자친구는 맨 처음 말을 트게 되었을 때부터 남자 같은 본인의 이름이 콤플렉스라고 고백했다. 부모님께서 다음에 태어날 아이는 꼭 아들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아주 남성적인 이름을 붙여주셨고, 그 이름 때문에 자라는 내내 또래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불리는 이름, 좋든 싫든 부여받은 순간부터 평생 써야 하는 이름이 콤플렉스라면? 게다가 그 싫은 이름이 붙은 이유가 다음번 태어날 아이의 성별이 아들이어야 한다는 집안의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라면? 


14살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다음번에는 아들이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딸의 이름에 무조건 ‘아들 자(子)’자를 넣어 모든 딸의 이름을 ‘’자 돌림-순자, 말자, 민자 등등…-으로 대충 붙여주었다던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만큼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건 사실 어느 시대착오적이고 보수적인 한집안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는 주변에 유난히 남자 형제를 한 명 둔 누나이거나, 혹은 여동생인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 집도 그랬고. 엄마, 아빠, 아들 하나, 딸 하나. 이렇게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이 똑같은 구성을 보며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신기한 우연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에 의해 나타나게 된 사회적 현상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태아 성별 감별과 여아 낙태, 그런 행위가 ‘가족계획’이라는 단어 하나에 간단하게 허용되었던 게 결코 옛날 일이 아니다. 


또 많은 가정에서 여아와 남아에게 집안 구성원으로서 다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엄마가 없을 때 남자 형제나 아빠의 밥을 차려주는 건 딸의 일이었고, 똑같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공부를 잘하는 게 좋은 거라고 교육을 받다가도 “그래도 여자는 남자 잘 만나서 좋은 데로 시집 잘 가는 게 최고다.”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고, 이런 말은 심지어 학교에서까지도 들어야 했다. 커리어를 고민하고 공부를 하는 과정이 앞으로 성인이 된 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한 출발점이 아니라, 마치 ‘결혼’이라는 가부장제의 최종적인 목표를 향해가는 중간다리인 것처럼 말이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할 때는 갑자기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는 프레임이 따라붙었다. 공무원, 교사, 약사 등 몇 가지 직업군이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여기저기에서 들었고, 이 직업들이 여자에게 좋은 이유는 ‘결혼 후에도 경력을 유지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역시 모든 딸은 미래에 누군가의 엄마, 아내가 되어야 할 것임을 가정하는 프레임이었다. 그러나 ‘남자에게 좋은 직업’이란 프레임은 듣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커리어를 위해 너무 많은 노동시간을 투입해야 하고 노동강도가 센 직업은 여자가 피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욕망하고, 쟁취하고, 욕심부리기보다 어차피 나중에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되어야 하니 아내나 엄마의 구실을 하는 데에 최대한 소홀함이 없을 만한 그런 직업, 그런 커리어여야 한다는 주입. 나를 비롯한 모든 여자친구가 가정은 물론 교실에서까지 그렇게 ‘가정’이라는 테두리를 중심으로 그 반경에서 과하게 벗어나지 않는, ‘안전선’을 지키는 삶을 요구받았다. 


가정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안전한 선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올가미와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물 건너기 프로젝트>를 쓰게 되었다. 소설집 <피구왕 서영>의 두 번째 꼭지로 ‘가정’과 ‘성차별’이라는 키워드가 맞물려있는 이야기를 택한 이유는 열넷에 만난 한 친구가 계속 마음에 남아있었고, 자라는 내내 내 눈에만 보이는 것 같은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온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게 마치 모든 여자의 최종적인 목표이자 꿈일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전제하는 안팎의 교육에 넌더리가 난 사람으로서 오히려 그 선을 가장 부수고 싶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붙들고 살아온 한 친구에 대한 기억에서 주인공 ‘주영’의 캐릭터가 떠올랐고, 피를 나눈 가족들 사이에서 오히려 가장 큰 고립을 느끼는 인물을 만들었다. 여자는 꿈도 적당히(?) 좇아야 미덕이라는 오래된 세뇌가 머리와 마음 깊이 뿌리 박혀 오래도록 많은 결정을 미루거나, 망설였던 사람 중 하나로서 개인적인 결단을 망설이는 많은 친구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열넷에 만난 그 친구, 그 친구가 지금은 자신의 이름에 스스로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도 들어있다. 콤플렉스를 있는 그대로 고백해준 그 친구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물 건너기 프로젝트>라는 이야기는 쓸 수 없었을 것이다. 


+ '가족'이라는 집단을 낯설게 보고 싶다면, 한국사회에서 가족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 이데올로기의 민낯은 어떤지 분석한 <이상한 정상가족>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또 페미니즘을 다룬 도서로는 최근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 글은 독립출판물 <피구왕 서영>의 각 단편소설을 쓰게 된 개인적인 이유를 더듬는 기록물입니다. 총 여섯 편의 소설 뒤에 있는 이야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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