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요일 - 79일 차
☀☁☀ 5월이라 그런가 오늘따라 나무도 푸릇푸릇해 보이고 바람도 따뜻한 것 같다.
나는 미국 동부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서부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미국에서 살게 된 지 17년이 되었는데도 영어를 잘한다고는 못하겠다. 공부나 일하는 데 불편함이 없고, 사람들이랑 대화도 잘하는 편이지만 교과서처럼 말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아무래도 미국인들과 진짜 친한 친구처럼 지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보딩스쿨을 다녔는데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통학을 했고 기숙사에는 주로 외국 학생들이 살았다. 수업을 마치면 미국인 학생들은 집으로, 나는 기숙사로 돌아갔으니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대학생 때는 주로 한국인들이랑 어울렸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과 친구가 된 건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많은 표현을 배우게 된다. 회의나 점심시간의 대화에서 나는 귀를 쫑긋 세운다. 새로운 단어나 관용구를 들으면 기억해 뒀다 다음에 꼭 써먹는다. 내가 적절한 단어를 몰라 어버버 하면서 장황하게 설명하면 상대방이 한두 마디로 깔끔하게 정리해 줄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쾌감을 느끼면서 새로 알게 된 표현을 머릿속에 입력한다.
배운 표현 중 당장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해 봤다.
사과와 오렌지처럼 다른 두 가지를 비교할 때 쓴다.
최근 우리 팀의 수장이 바뀌었는데, 팀원 중 한 명이 이 상황을 대통령 선거에 비유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을 때 다들 세상이 끝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내 인생은 정작 바뀐 게 없더라”면서. 이 발언은 이민자들을 포함한 우리 팀의 여러 직원들을 화나게 했다. 주로 ‘미국인이자 백인이자 남자인 만큼 영향을 받지 않았겠지!’와 ‘apples to oranges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라는 의견이 많았다.
복에 겨운 문제라는 뜻이다.
어쩌다 보니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돈 많은 학생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어떤 나라? 여기저기에 집이 하도 많아서”라고 답하는 친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회사 동료가 “champagne problem이네~”라고 하면서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줬다. 불우한 사람들이 겪는, 또는 기후 변화와 같이 지금 당장 해결하고 관심 가져야 하는 심각한 문제에 비하면 별것 아닌 고민이라는 의미로 쓴다고 한다.
말 그대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뜻이다.
낮게 달려 있는 열매는 따기 쉽다. 손쉬운 일이라는 뜻이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감정•분통을) 터뜨리다'라고 정의한다. 몇 주 전 친한 동료가 열이 잔뜩 오른 채로 씩씩대며 내 사무실에 들어와서는 “나 vent 좀 해도 돼?”라고 물어봤다. 이때 나는 vent에는 화를 분출함으로써 잔뜩 오른 열을 식힌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vent의 또 다른 뜻은 통풍구, 환기구인데 어쩐지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열심히 들었더니 말도 느는 것 같다. 영어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사람들이 하는 말에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궁금해 한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