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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ed thoughts May 03. 2024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시작한 건데 어렵다

2024년 5월 2일 목요일 - 80일 차

☀ 종일 블라인드를 내린 채로 집에만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맑았던 것 같다.


 올해 2월 초부터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사실 글이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하다. 매일 자정이 되기 전 워드 파일에 적어도 한 문장씩 남기고 있으니, 메모에 더 가깝다. 맹장 수술받았던 날을 제외하고는 지난 80일간 잘 지키고 있다. 처음에는 ‘매일’에 익숙해지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며칠 연속으로 성공하고 있는지 숫자를 셌다. 엄마한테 ‘n일 차 성공!’하며 인증하는 재미가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글감 찾는 데 정신이 팔렸다. 통근 버스 기사 아저씨가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Have fun!”이라고 외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응? fun? 회사가 재밌으려고 가는 곳이야? 근데 그럴 수 있음 참 좋겠네. 오, 글감으로 고려해 볼 만한데?’라고 생각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땡큐하고 말았을 건데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고 난 뒤라 그런지 모든 게 다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발견한 글감이 괜찮을 땐 잘 써서 브런치스토리에 올리고 싶었다. 공을 들여 쓰고 여러 번 고친 뒤 부모님께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극 T인 엄마는 논리적인 부분에, 극 F인 아빠는 감성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피드백을 주셨다. 합평이 끝나면 바로 글을 수정했는데, 이 과정을 반복하는 건 쉽지 않았다. 더 이상 고칠 데가 없다고 생각하는 글만 부모님과 공유했는데도 합평이 끝나고 나면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좋다고 생각했던 글이 알고 보니 형편없었던 것처럼 느껴져서 속상했고 혼란스러웠다. 또, 열심히 썼던 만큼 브런치에 올려서 얼른 끝내버리고 싶었는데 합평과 수정을 반복하다 일주일 넘게 글을 올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면 “안 해, 안 해” 소리가 절로 나오며 내가 먼저 지쳐 떨어졌다. 그렇게 빛을 보지 못한 글들이 내 컴퓨터 폴더에 쌓였다.


 글을 공개하지 못했다고 해서 남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포기까지 가는 과정 중에 배운 게 많았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갑갑했다. 그래서 워드 파일에서 나 혼자 하던 매일 글쓰기를 브런치에서 해보기로 했다. 엄마 아빠에게 결재받듯이 글을 쓰는 것 같아서 독립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브런치에 글을 매일 발행하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실천한 지 4일째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시작한 건데 어렵다. 브런치에 발행하는 글은 혼자 쓰는 글이랑 달랐다. 누군가는 읽을 거니까 하나의 글 정도는 되어야 했다.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하니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을 더해야 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지루하지 않게, 아니 적어도 읽다가 포기하지 않게 문장을 깔끔하게 다듬어야 했다. 브런치는 워드 파일처럼 마냥 편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혼자 하는 매일 글쓰기는 각질이 허옇게 일어난 얼굴을 하고 구멍 난 잠옷을 입어도 괜찮은 집 같다. 브런치스토리는 세수를 안 했으면 눈곱은 떼는, 머리를 안 감았으면 모자 정도는 써주는 예의를 갖추게 되는 외출 같다. 집에만 있다 보면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듯이 브런치스토리를 찾았다. 외출하면 적어도 일 하나는 해결하고 오듯이 브런치스토리에 매일 글을 쓰다 보면 뭐 하나는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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