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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ed thoughts May 05. 2024

그러게 아무 일 없다고 했을 때 그만 묻지

2024년 5월 4일 화요일 - 82일 차

☂ 종일 빗방울이 창문을 토독토독 두드렸다.


 나는 미국 시애틀에, 남자 친구는 캐나다 밴쿠버에 산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버스를 타고 밴쿠버에 가고, 남자 친구는 한 달에 한 번씩 운전을 해서 시애틀에 온다. 그렇게 한 달에 두 번 정도 만나고 있다.


 시애틀에서 혼자 보내는 주말이었다. 괜찮은 하루였다. 늦잠을 제대로 잔 덕분에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했고, 아점과 저녁을 든든히 챙겨 먹었으며, 한 달 동안 숙제였던 ‘눈물의 여왕’ 정주행을 마쳤다. 책상에 쌓여 있던 영수증이랑 우편물 정리까지 했으니 이 정도면 훌륭한 토요일라고 할 수 있었다.


 남자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좀 조용하다며 괜찮냐고, 무슨 일 있는지 물었다. 나는 별일 없다고 했다. 진짜냐고 물어서 진짜라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말해달란다. 진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서운한 것 같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남자 친구와 함께 있어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획이 바뀐 것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나도 계획 변경에 동의했고 이번 주말에 혼자 쉴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불만을 만들어 내는 것만 같았다. 결국 남자 친구의 사과로 이 주제의 대화는 마무리됐다.

 사과를 받으려고 했던 건 아니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인지 생각하느라 말이 없어졌다. 남자 친구가 또 다른 일은 없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일 있었는지 떠올리는 중이야”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남자 친구가 “떠올리는 거 그만하고 이제 어떻게 기분을 좋게 만들지 생각해 봐”라고 했다. 그러게 아무 일 없다고 했을 때 그만 묻지.


 우리는 가끔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없는 문제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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