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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ed thoughts May 06. 2024

말만 하는 사람은 쓰는 사람만 못하다

2024년 5월 5일 일요일 - 83일 차

☂ 분명 비가 오는 것 같은데 창밖을 보니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신호를 기다리는 아홉 대의 차 중 세 대의 와이퍼가 간간이 움직인다. 우산을 쓰기에는 애매하고, 운전을 하기에는 방해되는 정도로 비가 오나 보다.


가장 순정한 말은 오로지 한 음절로 이루어진 감탄사다. 가장 나약한 말은 남을 그럴듯하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짓말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조차 기만하는 거짓말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입증하고야 만다. 가장 허망한 말은 사랑을 맹세하는 말이지만, 그 허망함은 너무도 허망한 나머지 이상하고 야릇한 굳건함이 있다. 가장 영리한 말은 무수한 대화 끝에 매달리고야 마는, 자신의 허위를 자조하는 말에서나 가능해진다. 가장 아둔한 말은 누군가를 꾸짖는 말이다. 무섭게 가르치려 하면 할수록 점점 마음은 닫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가장 무서운 말은 정확한 말이다. 가장 정확한 말은 군더더기 없이 간명하게 집약적으로 초점을 맞추며 감정을 싣지 않기 때문에 냉혹하다. 가장 가난한 말은 말을 많이 하는 자의 입속에서 나온다. 가장 현명한 말은 그 말을 듣는 자가 듣고 싶어하던 말일 뿐이며, 가장 진실된 말은 말로 하는 순간 추레해질 뿐이며, 가장 영롱한 말은 했던 말들을 모두 부정하는 말일 뿐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은 차라리 신음이거나 비명이며, 신음과 비명 너머에서 가다듬어 하는 말은 기도와 겨우 가까워질 수 있다. 말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운을 비집고 생성되는 뜬금없는 농담의 말과 뜻 없이 손을 흔들며 건네는 인사말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언제나 반갑다.

<한 글자 사전(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18)> 중 ‘말’에서


 그는 일 년이 지나도록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정말 행복했었다. 그는 평생을 벙어리로 지낼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진실만을 얘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입을 열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말을 요구하고 있었으며 말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것은 슬픈 일이었다. 그는 말이 없이도 아내와 사랑을 나눌 수 있었으며, 말을 않고 있을 때야 비로소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랑한다고 말한 순간 사랑하는 마음은 빛을 잃으며 미안합니다라고 말한 순간 교묘한 말의 유희로 진실의 마음은 변색이 되어버린다. 꽃은 꽃이라고 부른 순간 꽃의 마음은 오로지 형식적인 관계로 멀어져가는 것을 그는 깨닫고 있었다. 말을 끊은 동안 그는 어둠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꽃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물과 다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상한 사람들(최인호 지음, 김무연 그림, 열림원 펴냄, 2006)> 중 ‘침묵은 금이다’에서


 출근 버스에서 <한 글자 사전>을, 퇴근 버스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읽으며 발견한 구절이다. 시인과 소설가, 똑 떨어지지 않는 장르와 소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권의 책에서 비슷한 주제를 같은 날에 만나다니, 신기했다. 안 그래도 요즘 ‘말’에 꽂혀 있어서 반갑기까지 했다. 말은 많이 한다고 느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은 정말 어렵고, 또 어려워야 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두 책에서 접한 구절은 내가 좋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매일 글쓰기를 시작한 뒤로 “요즘 왜 이렇게 말이 없어?”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생각해 보니 말수가 많이 줄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만하다. “괜찮아?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라고 묻는데 나는 별일 없이, 괜찮게 잘 지내고 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인 것도 아니다. 진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말을 줄이려고 노력 중인 건 더더욱 아니다. 말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때가 더 많다. 할 말이 딱히 없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사람마다 감정, 생각 등을 담는 그릇이 있다면 내 그릇의 크기는 스텐볼 중간 사이즈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그릇에 가득 차서 넘치려고 할 때면 누군가에게라도 달려가서 말로 덜어내야 하는 습관이 있었다. 남자 친구랑 하는 통화 중에는 나한테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는 ‘애니킴 업데이트’라는 코너가 있을 정도였다. 조금이라도 연락이 뜸해지면 친구들에게 “요즘은 썰 풀 거 없어?”라며 전화가 올 만큼 나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렇게 나는 말로 내 그릇을 관리했다.


 하지만 이렇게 비워내듯 말하는 건 안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아직 마음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털어놓는 불만은 화가 됐다. 앞뒤가 맞지 않아 상대가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나는 움츠러들거나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우겨버렸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 험담을 너무나 쉽게 하다가 후회했다. 나에 대해 불필요하게 많이 공유한 것들이 약점으로 돌아왔다.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고는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쓰기부터 했다. 글을 매일 쓰기 위해서는 글감이 많이 필요한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누군가에게라도 말해버리면 그만큼 쓸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글로 쓰고 나면 그릇이 많이 비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말할 필요도 크게 못 느꼈다.


 나는 워드 파일에 글을 쓴다. 그릇을 비우듯 생각을 화면 위에 펼친다. 그럼 머릿속에 엉켜 있던 생각들이 눈에 보인다. 하나의 글로 만들기 위해서 퍼즐을 맞추듯 생각의 조각들을 이어 본다. 원했던 그림이 안 나올 때도 있다. 없는 조각도 있다. 그럴 땐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인다. 운이 좋으면 그 속에서 찾고 있던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글을 쓸 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하고, 그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구성을 짜야한다. 그다음은 문단, 문장, 단어, 부호 등을 세세하게 고친다. 얼핏 보면 비슷한 뜻을 가진 것 같은 단어들 중 어떤 단어를 쓰는지, 반점을 어디에 찍는지에 따라 글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끊임없이 읽고 고칠 수 있는 글과는 다르게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끝이다. 그러니 말은 훨씬 무거우면서도 허망하다. 나는 침묵의 어색함을 못 견뎌서, 내가 대화를 이끌어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껴서 말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침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하도록 기다린다. 입이 무거워지니 귀가 열린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더 잘 들리고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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