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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ed thoughts Nov 05. 2024

어쩌면 제일 나다운 결혼식

 리조트를 통째로 빌려서 결혼식에 온 모든 사람에게 휴가를 선물하는 거야. 갤러리를 빌려서 남자 친구랑 찍은 사진을 전시해야지. 집 앞마당에서 하는 스몰 웨딩 나쁘지 않겠는데? 아니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소중한 사람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어떤 결혼식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그때그때 유행에 따라 마음이 바뀌긴 했지만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컸던 건 분명하다. 나다우면서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근사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지난 2주 동안 결혼식 날짜와 장소가 네 번이나 바뀌었다. 캐나다에 사는 프랑스인과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 함께하는 건 복잡한 일이다.

 우리는 밴쿠버에서 만났다. 내가 시애틀로 이사 가기 석 달 전이었다. 장거리 연애도, 캐나다에 남는 것도 싫다는 내게 남자 친구가 나를 따라 미국으로 오겠다고 했다. 대신 캐나다 시민권이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만 보고 미국으로 왔다가 헤어지기라도 하면 돌아갈 곳이 필요하다면서. 원래 같았으면 ‘이제 시작인데 벌써 끝을 생각하는 거야?’라며 화낼 법도 했는데 충분히 타당한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어 동의했다.


 남자 친구는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받고 시민권을 신청했다. 그동안 나는 미국에서 영주권 신청을 시작했다. 남자 친구가 미국으로 좀 더 수월하게 오려면 내 배우자 자격으로 미국 영주권을 함께 신청하는 게 유리했다. 결혼이 급해졌다는 뜻이다.

 원래는 내년 2월쯤 남자 친구와 한국에 같이 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했다. 2월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고, 친한 친구가 2월 중순에 결혼한다길래 한 번의 여행으로 큰 일 두 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월에 결혼 허락을 받으면 5월의 신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결혼이 급해진 만큼 올해 11월 19일에 시애틀 법원에서 식을 올리기로 했다. 남자 친구와 만난 지 3주년인 데다가 어디서 본 게시물에 따르면 길일이라고 했다. 결혼식 자체는 소박해졌지만 식이 끝나고 근처 식당을 빌려 친한 친구들과 파티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급한 마음이 좀 가라앉고 난 뒤 11월 19일이 화요일이라는 게 생각났다. 다음 날 다들 출근해야 하는데 즐겁게 놀 사람들이 있을까? 11월 8일 금요일로 날짜를 바꾸기로 했다. 19일에 의미 부여를 너무 많이 해놓은 탓에 아쉬웠다. 하지만 무슨 옷을 입어야 법원에서 하는 결혼식에 어울릴지, 어떤 식당이 맛도 있고 멋도 있을지, 누구를 초대할지 생각하다 보니 서운함이 달아났다.

 남자 친구가 캐나다 시민권 면접에 합격했다. 10월 30일에 있을 선서식에서 가지고 있던 캐나다 영주권 카드를 자르는 의식을 한다고 했다. 세리머니가 끝나면 캐나다 여권을 신청하고, 새 여권을 받을 때까지는 캐나다를 벗어날 수 없단다. 11월 19일에 미국에서 하는 결혼식은 남자 친구의 참석이 어려워졌다.

 당장 시애틀로 와서 선서식 전에 결혼을 하자고 하니 프러포즈 전에는 안 된다고 한다. 그렇게 프러포즈의 날짜를 대략 알게 되었다.


 결국 11월 8일, 남자 친구 아파트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혼인 신고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떠올려 봤다. 거실에 있는 식탁 위에서 할 게 뻔하다. 그 옆에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쓰레기통이 있는데…. 결혼식 로망에서 점점 멀어져 가다 못해 최악으로 가는 것 같아 울컥했다. 남자 친구가 로맨틱하지 않은 결혼식이라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쓰레기통은 미리 안 보이는 데로 옮기고, 거실을 꽃과 초로 예쁘게 꾸며놓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마음이 풀려 케이크도 사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남자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샴페인까지 사주겠다고 했다.


 결혼식 날짜가 급하게 잡힌 데다가 장소도 미국에서 캐나다로 바뀌는 바람에 초대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특히나 시애틀에서 세 시간 넘게 운전해서 오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만한 이벤트도 없었다. 그래도 캐나다에서 하는 결혼식에는 증인 두 명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부탁을 해야 했다.

 남자 친구가 같은 동네에 사는 지인들에게 부탁하겠다고 했지만, 증인만큼은 우리 둘 모두에게 소중한 사람이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애틀에 사는 친한 언니 부부가 생각났다.

 점심 식사를 같이하며 11월 8일에 시간이 괜찮은지, 밴쿠버에 올 수 있는지 물었다. 갑작스러운 부탁을 하느라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언니 부부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줬다. 많은 인원을 초대하는 것도 아닌데 언니 부부를 떠올려준 게 감동이라면서. 청첩장 없는 청첩장 모임이라 내가 밥을 산다고 하니까 언니 부부는 화들짝 놀라면서 결혼 선물을 준비해야겠다고 했다.


 회사에서 가장 친한 동료에게 남자 친구 아파트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풀이 죽어 있는 나를 보며 옷은 뭐 입을 거냐고 물었다. 생각 안 해봤다고 하니까 단정한 흰색 원피스라도 입으라고 했다. 친구들에게도 미안해서 초대를 못 하고 있다고 했더니 나만 원한다면 자기는 갈 수 있다고 했다. 세 시간 운전이 뭐 대수냐며. 다른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나의 날이니까 나의 이벤트로 만들라고 했다.


 상황이 원했던 대로,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어느 순간 손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친한 동료 말이 맞다. 나와 남자 친구의 날이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쁜 원피스를 샀다. 남자 친구와 실내 장식품을 구경했다. 첫 데이트 장소였던 카페에서 케이크를 사기로 했다. 우리를 위해 세 시간 이상 기꺼이 운전해 주는 사람들이 손님으로 온다. 식이 끝나면 우리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모두의 얼굴을 보며 식사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그렸던 결혼식이 이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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