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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ed thoughts Mar 30. 2020

코로나19 사태로
알게 된 다섯 가지

제목은 거창하나 알고 보면 오래된 집콕으로 심심해서 끄적거려보는 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엄마와 나는 하루를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일주일에 다섯 번은 한 시간씩 글 쓰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글에만 온전히 투자하는 시간이 많이 생기니 요즘은 생각도 온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 단위로 하는 것 같다. 특히 샤워할 때 여러 구절이 감당 안 될 정도로 많이 샘솟는데 이를 그때그때 다 기록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워 생각하는 대로 타이핑되는 기계를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오늘 뭐 먹지'가 제일 많이 쓰일 것 같아 생각을 바로 접었다. 다음은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해 떠오른 이런저런 생각을 놓치지 않고 모아 엮어본 것이다.


1. 몸은 정말 정직하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회사는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밖에 나갈 일도 없어졌을뿐더러 정부에서 당부한 대로 엄마와 나는 꼼짝 않고 집에만 있었다. 어디든 대여섯 걸음이면 갈 수 있는 자취방에서 나는 잘 준비를 위해 2층 침대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때 제일 많은 칼로리를 소비한다.

이처럼 운동량이 현저히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꼽시계는 기가 막히게 하루 세 번 정확히 울리고, 식사 후에는 입이 텁텁하답시고 과일이라도 꼭 챙겨 먹고, 간식으로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던 과자까지 섭렵해버렸다. 종일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타자를 두들기는 일밖에 하지 않는데 평소보다도 더 먹으니 살이 아주 구석구석 잘도 쪘다. 아빠가 영상통화 중 나를 보시고는 이제 좀 얼굴에 부티가 난다고 하셨는데, 살이 많은 여성이 미인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떠올라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Microsoft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청바지를 입어줘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매일 파자마만 입고 있으면 모든 게 괜찮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는 이유였는데 설득적이었다. 하지만 청바지를 입어볼 용기를 내기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2. 집에만 있어도 다칠 사람은 다친다.

대부분의 사람은 집을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여길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최근 입은 부상을 생각해보면 집도 꽤나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발이 갑갑한 느낌을 유난히도 싫어해서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양말부터 벗고 맨발로 활보한다. 그리고 그 날은 중간고사가 며칠 안 남은 터라 교과서, 필기 노트, 프린트물 등의 것들이 여기저기 요란하게 널려있었다. 이러한 나의 생활 습관과 환경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공간을 많이 차지해 책상에서 쫓겨난 3공 바인더는 쓰기 편하게 링을 열어 바닥에 활짝 펼쳐두었는데, 창턱 위로 올라가 밖을 구경하다 내려오던 나는 링을 아주 잘근 밟아버렸다. 덕분에 발바닥에는 링이 파고들기 시작한 곳과 깊숙이 자리한 상처의 끝이 링 모양대로 곡선을 그려 약을 바르기도 곤란한 첫 번째 상처와 너무 놀라 급하게 발을 빼며 살점이 들려버린 두 번째 상처가 생겨버렸다. 2주 동안 발뒤꿈치를 들고 절뚝거리며 걸어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앞쪽까지 쓰라린 웃픈 상황이 되었다.


이제 좀 정상적으로 걷는다 싶더니 멀쩡한 발로는 예전 언젠가 그릇을 깨 먹었을 때 미처 치우지 못한 작은 유리 조각을 콕 밟아버려 또 다른 상처가 났다. 이 외에도 바퀴 달린 의자에서 지익 미끄러져 정강이를 책상 모서리에 세게 박기도 하고, 종이에 손톱 큐티클부터 마디까지 길게 베이기도 하고, 어쩌다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발견하고 나니 그제야 아프기 시작한 발톱의 멍도 생기는 등 크고 작은 부상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서로의 안부를 예전보다 더 살뜰히 챙기는 매니저는 내 발의 부상을 알고 난 뒤부터는 맨발로 다니지 말라거나 바닥을 잘 치우라는 등의 잔소리로 미팅을 마무리한다. 집, 생각보다 위험한 곳이다.


3. 은근한 예민함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무기한으로 길어지고 심각성이 세계 곳곳으로 번지면서 은근히 예민해지는 것 같다. 원격으로 회의 중인데도 불구하고 발표하던 사람이 기침하는 소리에 나는 기겁을 하고 괜한 찝찝함을 느꼈다. 평소에도 집에서 자주 들리던 구급차 소리가 이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소리로 들리고, 건조한 탓에 자주 나는 코피도 괜히 코로나19 증상을 검색해보게 한다. 이런 예민함은 온라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페이스북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직원(공식 명칭을 직역하면 '젊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원들'이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누군가 꼬집었다), 유학생, 그리고 여행과 관련된 그룹에 속해있는데, 이곳에 올라오는 게시물과 그에 달리는 댓글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잘 보여준다.

최근에 본인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체육시설이 문을 닫았다며 주변에 아직 영업하는 헬스장이 있는지 물어보는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을 올린 사람은 원하던 정보 대신 아파트에서 체육시설 출입을 금지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얻었다. 한 유학생은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시작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새벽 3시에 시작하는 수업이 힘들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초반에 달린 댓글들은 '한국에 돌아갔으면 그 정도 각오는 하고 간 것 아니냐'와 같이 분노가 가득한 반응이었다. 그 뒤를 이어 '좋은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는 걸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예민하냐'며 이전 댓글 작성자들에게 화를 내는 댓글이 달렸다. 여행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지에서는 항공권 취소와 관련된 문의는 항공사에 직접 하거나 적어도 묻기 전에 이전 관련 게시글 좀 보라는 일침글이 올라왔다. 댓글창에선 이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그냥 지나가면 되는데 유난이라는 사람들의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예민한 데다 집에 있는 시간은 늘어나니 언쟁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양쪽 다 맞는 말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모두가 불안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4. 공동체 의식은 큰 힘이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외출 제한의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고립감이 아닐까 싶다. 최근 밴쿠버 다운타운에서는 이런 우울함을 달래줄만한 새로운 운동이 시작되었다. 3월 22일부터 매일 오후 7시에 함성과 함께 박수 소리, 냄비 두들기는 소리, 악기 소리 등을 들을 수 있는데, 이는 의료진들을 향하는 응원이기도 하며 지역 주민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오후 7시만 되면 -- 요즘은 심심한지 사람들이 점점 빨리 나온다 -- 많은 사람들이 발코니로 나와 서로를 향해 손뼉을 쳐주는데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내고 있다는 생각에 힘이 많이 된다.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는 함께 노래를 부르더니 아이스하키에 환장한 나라인 캐나다에서는 격려도 스포츠 응원처럼 한다.

식료품점 내 계산대 줄에 2m마다 세워져 있는 안내문

또 다른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식료품점이다. 뉴스, 기사, 그리고 SNS에서 전해진 외국의 사재기 현장을 보고 나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밴쿠버는 비교적 대응책을 빨리 내놓고 실천하며 사람들도 이에 잘 따르고 있다. 식료품점은 개장 시간을 조정해 오전에는 노약자분들이 먼저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인기가 많은 품목은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고, 매장 내 손님의 수도 관리한다. 그리고 매장 내에서 계산을 하려는 사람이나 매장 밖에서 입장 대기하는 사람들 모두 2m 간격으로 표시해둔 지점에 질서 있게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성의껏 안내하는 매장과 이를 잘 따라주는 손님의 모습은 어려운 시기에 위안이 되는 풍경이었다.


예전에는 불편할 정도로 문을 열어주고 잡아주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들 어떻게든 문에 손을 안 대보려고 쏙쏙 빠져나가는 일이 늘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밴쿠버는 아주 바람직하게 조금씩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5. 한국은 위대한 나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몇 번을 생각해봐도 대한민국은 진짜 대단한 나라다. 확진자가 무섭게 늘기 시작해 중국 다음으로 경계 대상이 된 우리나라가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응을 보여준 나라로 인정받는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의료장비 지원 요청까지 했다.


미국에서 먼저 시작된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선별 진료소에 적용하다 못해 수산물 시장이며 도서관에도 응용해 회도 팔고 도서 대출 및 반납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진정한 미친 민족이다.


외국이 한국의 방역체계를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초과근무에 익숙한 의료인이라는 게시물을 SNS에서 본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하루하루 고통받는 많은 분들이 하루빨리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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