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 있는 우리 팀은 대부분의 직원들이 한 평 반 남짓한 개인 사무실을 쓴다. 대신 팀원 모두가 같은 층에 있기 때문에 복도를 거닐며 여기저기 얼굴을 빼꼼히 들이밀고 안부를 묻거나 간단한 업무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홀로 밴쿠버에서 원격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복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hallway interaction)'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이 제일 아쉬웠다. 잦은 회의로 동료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편이긴 하지만 잠깐씩이라도 매일 만나 교류하는 직원들 사이에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물리적인 상호작용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본사 및 대부분의 지사가 재택근무를 의무화하면서 모든 직원들의 물리적 교류는 중단되었다.
이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많은 직원들 간의 물리적 거리가 사회적 거리로 벌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노력을 했는데, 이 중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약 16km 떨어진 동네에서 미국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자 최고 경영자인 사티아 나델라뿐만 아니라 커트 델베네 부사장은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회사의 새로운 방침 및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워싱턴주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 사항이 주된 내용이었다. 더 자세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여러 웹사이트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무료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회사의 복지 제도를 상기시키며 직원들의 정신적인 건강까지 살뜰히 챙겼다. 이후 지금까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또는 새로운 권고사항이 생길 때마다 커트는 모든 직원들과 이메일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커트가 이메일을 보내면 꼭 그다음에는 내가 속한 조직의 대표가 이메일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커트가 언급한 사항이 우리 조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명확하게 짚어내며 이번 사태로 힘든 이가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이후에는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던 조직의 대표에게 보고하는 직원이, 그리고 또 그 직원에게 보고하는 직원이 차례로 이메일을 보냈다. 그 이메일의 고리는 본인에게 가장 편한 시간에 일해도 된다는 나의 상사의 상사가 보낸 메시지로 매듭지어졌다. 우리 팀의 살림을 담당하는 직원은 재택근무에 필요한 가구나 사무용품은 회사에 청구해도 된다는 새로운 제도를 공유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내가 받은 모든 이메일은 공통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어 고맙다는 점과 우리 개개인이 세상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를 강조했다. 단 몇 문장으로 자부심이 가득해져 어깨에 힘이 들어가 업무에 더욱 성의껏 임하는 나를 발견하곤 놀랐다.
우리 팀은 매주 목요일 'quarantine lunch' 시간을 가진다. 나는 집에서 엄마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 때문에 경험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정오가 되면 마이크로소프트 팀즈를 사용해 다 같이 얼굴을 보고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것 같다. 금요일에도 점심시간을 함께 보내는 듯한데 이날은 보드게임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팀은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았다. 특별히 정해진 점심시간이 없었던 탓에 스케줄이 들쭉날쭉해 짬이 날 때면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이나 근처 카페테리아에서 사 온 음식을 각자 알아서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정 안 나는 경우엔 회의실에 음식을 가지고 와 먹는 직원들도 더러 있었다. 직장인의 모습을 하고 -- 아마도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는 정장 차림의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을 상상했던 것 같다 --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풍경이었다. 나의 상사가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는 미팅을 잡지 말자"라는 캠페인을 시작한 후로 점심시간의 개념이 생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직원들은 책상에서 따로 점심을 먹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덕분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업무 외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요즘 우리 팀은 적극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공유하려 노력한다. 집 안에서의 개인 사무실을 어떻게 꾸미고 있는지 사진을 주고받기도 하고, 막내 동생이 초콜릿을 많이 먹어 아프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시간이 남아 한 겹 한 겹 쌓아 만든 크레이프 케이크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들이 꽤 많다. 결혼한 줄도 몰랐던 한 개발자는 두 살배기 딸을 돌봐야 해 회의 시간을 자주 바꿨고, 나의 동료는 화상 회의 중인 딸 뒤로 왔다 갔다 하시는 어머니를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또, 회의마다 배경에 깔리는 음악으로 개발자들을 관리하는 직원의 딸이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며 최근에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연주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뚝뚝한 말투 때문에 여태 차갑게만 느껴졌던 직원이 갑자기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에 당황하며 사정을 설명하는 모습에서 사람 냄새가 물씬 나 괜히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잠깐 상대의 사무실에 들러 업무를 해결할 수 있었던 환경이 제한되면서 예전보다 미팅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앉은자리에서 여러 회의에 연달아 참여해야 하는 직원들이 느낄 피로감을 고려해 최근 모든 회의를 5분에서 10분 정도 일찍 마무리 지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잠깐이라도 집 밖 공기를 쐬거나 스트레칭을 하며 쉬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다.
원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하다 보면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다수일 땐 동시다발적으로 질문이 던져지기 때문에 말이 섞여 혼란을 빚기도 하고, 발표하고 있는 사람을 멈춰야 하는 수밖에 없어 회의의 흐름이 끊기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네트워크 환경이 원활하지 못한 직원의 질문은 새로운 주제가 시작된 뒤 전달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발표 시작 전 희망하는 질의응답 형식을 알려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채팅창에 질문을 올려주시면 중간중간 확인하고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발표가 끝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와 같은 안내를 미리 하면 보다 매끄러운 회의 진행이 가능하다.
근무 환경이 바뀌어도 미리 계획되었던 대부분의 미팅은 온라인으로 대체되기만 했을 뿐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우리 팀은 분기마다 전체 실적을 확인하는데, 2시간 동안 대여섯 명의 매니저가 차례로 본인 팀의 성과와 현재 추진 중인 프로젝트를 줄줄이 읊는 일방적인 발표 형식이라 활기를 찾기 어렵다. 원격으로 이루어질 이번 회의도 더 지루하면 지루했지, 덜 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회의 진행자는 깜짝 퀴즈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회사 내에서 쓰이는 약자의 풀이와 같은 간단한 업무 관련 지식을 점검하는 문제들로 이루어진 퀴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해야 했던 직원들에게 좋은 환기 장치가 되었다. 정답을 빨리 맞힐수록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다음 문제로 넘어갈 때마다 상위권 점수가 공개되어 긴장감까지 더해졌다.
우리 팀에는 Ministry of Fun이라는 오락부 같은 그룹이 있다. 업무 외에 직원들이 소통할 수 있는 활동을 기획하고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나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재밌는 일을 벌이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직급이 높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한 지 2년 미만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happy hour(해피 아워)'를 가졌다. 손님이 많이 찾지 않는 시간에 간단한 음식이나 음료를 할인해주는 해피 아워는 일터에서 해방된 시간을 자축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준비물은 술을 포함한 음료였을 정도로 굉장히 편한 분위기의 모임이었다. Ministry of Fun 멤버 중 한 명이 설문조사를 통해 미리 알아둔 각 직원의 흥미로운 사실로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대학교에서 아카펠라 공연을 했던 직원, 꽁꽁 언 폭포를 등반해본 직원 등을 맞추고 해당 직원이 이야기를 공유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며칠 전 금요일에는 원격 장기자랑을 했다.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 구성원이 초대되어 마이크로소프트 팀즈에서 만났다. 사회자의 우쿨렐레 연주와 노래로 시작된 장기자랑은 요가 동작을 선보이거나 저글링 실력을 뽐내는 것으로 이어졌다. 오디오 문제로 세 번의 시도 끝에 아델의 노래를 완창한 직원도 있었다. 이날의 행사는 던지는 족족 잽싸게 공을 물어오는 강아지 자랑으로 마무리되었다. 사무실에만 있었을 때는 보지 못했을 직원들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신선했다.
지난 3월 20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라는 표현으로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외국 기자들도 '사회적' 보다 '물리적'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 듯하다. 이는 신체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사회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으라는 메시지를 보다 명확하게 전하기 위함이다.
최근 들어 나의 직장뿐만 아니라 팀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더욱 늘었다. 내 상사의 상사가 매번 말하듯 이런 상황 속 집에서라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데에 매우 감사하다. 다들 지쳐가고 있을 텐데도 그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신나게 이겨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팀원들은 긍정적인 태도로 모두가 힘을 모으면 힘든 시기도 슬기롭게 잘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큼은 더욱 가까워진 기분이다.
우리 팀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다. 다만,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