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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타이퍼 Jun 29. 2019

우울해도 나가서 돈 벌어야 해

동네 의원 간호사의 구직은 이랬다.


  갑자기 들이닥친 가난이 고난스러워지고 있었다. 넋 놓고 있다간 나도 그도 고양이들도 모두 굶어 죽을 판이었다. 나를 걱정하던 가까운 친구들이 식료품을 대신 결제해 배달시켜주고 밥을 사주고 심지어 집으로 데려가 먹여주고 재워주기까지 했다. 이대로 멍만 잡고 있다가는 이 고마운 사람들에게 레알진상 친구가 될 거 같았다.


[움직이자! 뭐든 해야지! 일을 더 구해야겠다.]


훑어보자는 마음으로 Seek.com에 들어갔다. 검색어에 Registered nurse를 넣고 지역을 설정하자 익숙한 동네 이름과 병원들이 주르륵 떴다.


[음, 이 병원... 악명 높지 직원들 등꼴 빼먹기로. 패스. 음..... 여기 시급 쥐꼬리 패스. 음..... 이 자린 영어 겁나 잘해야겠군, 패스!]


패스만 내내 하다가 눈에 띈 패스를 패스한 구인광고. 우리 집에서 운전하면 15분 거리에 있는 동네의원(GP)이었다. 이 망할 땅덩어리만 쓸데없이 큰 호주에서 15분 운전이면 상당히 가까운 거다. 게다가 캐주얼 포지션을 구한단다. 풀타임을 원하면 지금 일하는 천국 같은 직장을 그만 둘 생각이 1도 없는 나로선 곤란할 뻔 했는데! 그럼 어디 한번 눌러볼까.

어.플.라.이.


그렇게 구인 리스트를 훑다가 집 가깝다는 이유로 한 동네의원에 별 긴장감 없이 지원을 했다. 그 구인 글이 올라온 날짜가 벌써 3주 전이라 이미 사람을 구했을 거라 반쯤 생각하면서. 어쨌든 어딘가 지원을 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며 평소라면 절대 없었을 이 엄청난 실천력을 떠벌리려고 친구에게 보낼 카톡을 두드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다.

   원래는 모르는 번호는 절대 안 받는다.

   요즘 광고 전화가 극성이다.

   하지만 어쩐지 받아야 할 것 같다.


“헬-로우?”

제2의 언어로 영어를 하는 중년의 남자 사람의 목소리로 "너 씩닷컴에서 우리 클리닉에 지원했지? "

    

    아니 세상에

    나 지원한 지 한 시간이나 지난 거야 뭐야?

    반응속도 무엇.

    이토록 빠를 일인가?


이것은 얼굴도 못 보는 전화 영어에 극도의 공포를 가진 내게 갑작스럽게 닥친 영어 전화 인터뷰. 등줄기가 서늘하고 관자놀이에 핏줄이 뻣뻣해지는 기분이었다.


예상 가능한 대화들이 오갔다. 다행이었다. 대부분 무리 없이 알아들었고 대답했다. 두 번째 언어로의 영어 사용자인 닥터 사장님도 내 말을 무리 없이 알아들은 것 같았다. 급여에 관한 대화까지 첫 통화로 하게 될 줄을 몰랐어서 당황했던 것만 빼면 괜찮았다.


어느 나라 사람일까.

가장 먼저 궁금했던 건 그 닥터 사장님의 출신 나라였다. 경험에 의하면 출신 나라는 그 사장님의 전반적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기 외국인 닥터의 상당수가 인디안, 아니면 중국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까지 몽땅 아우르는 친숙한 아시안. 혹은 이란.


재빨리 구글에 클리닉 이름을 넣었다. 닥터 소개란을 보는데 느낌이 쒜에-했다. 닥터의 이름에서 페르시안이 느껴졌다.


첫 직장 최악의 추억 속에 있는 닥터도 이란 사람이었다. 그 피하고 싶었던 나라 출신으로 예상되는 사장님이 나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뉘앙스로 인터뷰 날짜를 잡자고 했다. 이렇게 신속하게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대면 인터뷰까지 잡아버리는 것을 보아하니 그들은 구인에 똥줄이 활활 탄다는 말이겠다? 그럼 마음 편하게 먹고 가서 면접 보는 걸로! 결정했지만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바늘같이 예민해졌다.


내 옷장에는 온통 청바지에 스웻셔츠, 꽃무늬가 만개한 치렁한 원피스나 그 비슷한 것들 뿐이다. 아껴야만 살 수 있는 이 와중에 면접용 그러니까 일회용이 될게 뻔한 직장인st 옷을 사야 했다. 아깝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해서 꼭 붙어야겠다 다짐하며 적당해 보이는 정장바지st 타겟표 검정 바지를 19불 주고 사 입었다. 언젠가 사두었던 유니클로 오피스룩st 상의에 처박아 두어 있었는지 까먹을 지경이었던 페라가모 (이건 st 아니고 레알) 플랫슈즈를 꺼내 신었다. 그러고서 거울을 보니 실소가 나왔다. 지난 반년 간 스트레스를 먹어 조졌더니 얼굴뼈가 더 자랐나 거대한 두상이 짧은 몸통에 붙어있는 꼴이었다. 어차피 외모 보고 뽑을 일은 아니잖냐며 스스로 위로했다.


비율 똥망의 몰골로 인터뷰를 보러 간 아침 10시.

낯선 의원의 낡은 문짝을 밀어 열고 들어가니


리셉션에 나이 꽤 있어 보이는 여자 두 분. 다정해 보이진 않는 얼굴 표정.

“나 열 시에 인터뷰 보기로 한 아렌인데요”

”아, 췐? 너구나.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

췐? 그건 누구야.

설마 내 이름을 지금 췐으로 읽은 거입니까 지금?

뭐 맘대로 읽어지는 이름이야 호주 살면서 한두 번도 아니니 그냥 내가 췐 하자 오늘은.


네이티브 스피커의 호주 여성이 다가와 해맑은 얼굴로 상냥하게 나이스 투 미튜 하며 악수를 청하고 나이스 투 미츄 투 하며 손을 맞잡자 주변에 대기 중이던 환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 아시안 여자는 뭐지의 시선]을 뒤통수로 받아내며 프렉티스 매니저의 사무실로 들어가 앉았다. 긴장을 감출 길 없이 모여드는 내 공손한 손가락들. 당당하려고 다짐했는데 왜 내 어깨는 이토록 쪼그라들며 두 손은 공손히도 모이는지..


왜 한국에서 호주로 왔는지 물었다.

”아 내가 그때 너무 어렸어”라고 해버렸다.

그리고 다급히 부연설명을 했다.

“호주에 1년간 워킹홀리데이로 와봤더니 너무 좋길래 다시 살러 왔어요” 라고.

물론 [그런데 다시 와서 살아보니 구려서 이럴 거 오질 말걸 하고 후회 중이고요]는 생략했다.


왜 동네의원 간호사(Practice nurse)가 되었는지 물었다. 이때까지 모든 클리닉 면접에서 나온 질문 중 하나였다. 상당수의, 아니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졸업과 동시에 대형 종합병원에서 일하길 꿈꾸니까. 작은 동네 의원의 간호사를 꿈꾸는 간호대생은 잘 없으니까. 그럴 때마다 매번 솔직하게 답한다.


”남들 잘 때 자고 남들 놀 때 놀 수 있잖아”

사실이다. 내가 쥐피 널스가 된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


9 to 5의 삶이 가능한 것.

3교대가 아닌 것.

주말과 공휴일은 쉬는 것.


대형 병원 간호사는 3교대로 근무한다. 크리스마스에도 부활절에도 그 어떤 빨간 날에도 누군가는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 물론 그런 날 일하면 돈은 더 준다. 그리고 평균 시급도 동네의원 간호사보다 높다. 하지만 나는 남들 노는 날 놀고 싶었고 남들 자는 시간에 자고 싶었다. 천성이 게을러서 돈보다 쉬는 게 더 좋았다.


프렉티스 매니저는 내 지난 경력에 대해서, 내 고향에 대해서, 내 가족에 대해서, 내 남편의 직업에 대해서 까지 물었다. 인터뷰 도중에 두 명의 사장님 중 하나라는 닥터ㄴ이 들어왔다. 외형이 우려했던 대로 페르시안을 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펄션 Persian 페르시안. 이 언어를 쓰는 보스 밑에서 일하면 괴롭다는 풍문이 있다.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모르나 겪어 본 바에 의하면 영 근거 없는 소리도 아닌 것 같다.


쪼그라든 공손한 두 손을 하고서 최선을 다해 내면의 영어 공포를 숨겨가며 열심히 대답했다.

대체적으로 스무스하게 넘어갔다고 생각하면서 안도하려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문장이 지나가 버렸다.

'~~~ 익스펙티드 어쩌고 저쩌고.?' 하고 질문형으로 문장을 끝낸 사장님 닥터ㄴ.


못 알아 들었다.

이게 그렇다. 예상을 하고 있는 대화의 흐름이 있다면 아예 내용이 안 들리는 불상사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영어나라살이 짬이 벌써 10년이 되려고 하는 마당에 짬바이브라는 게 있다. 그런데 이번엔 익스펙티드 라는 단어가 나올 만한 대화의 흐름이 아니었는데 질문형으로 문장이 끝나서 나는 많이 당황했고 동공은 지진이 났고.


“웰...어.....낫....파...티..큐...러...리...” 라며 '특별히 뭔가는 없....' 정도만 말하며 뜸을 들였다. 저 둘 중의 한 사람이라도 첨언을 한다면 내용 파악을 할 수 있으니까.


[누구든지 말을 해. 어서 말을 덧붙여 물어줘!]


하지만 아무도 덧붙이지 않았고 4개의 눈동자가 나만 바라보는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말을 못 했다. ‘다시 말해줄래?’ 라고 하기엔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못 알아듣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동공이 지진 난 채로 정적이 10초간 흐른 것 같다.  


질문을 했던 닥터ㄴ이 드디어 덧붙여 물었다.

그날 통화했던 닥터ㅇ랑 디스커스 안 했니?라고.

[아. 기대한 페이뤠잇을 묻는 거구나!]

안 그래도 공손했던 두 손을 더 공손하게 모아대며 나는 말했다.

“아, 그날 닥터ㅇ이 31-33불 사이로 말했는데” 하고 주저주저하면서.

아마 내가 못 알아 들었다고 생각하는 대신, 돈 이야기를 몹시 어려워하는 소심한 아시안 널스 정도로 생각하겠지? 그렇겠지?

등줄기가 또 서늘했다.

환자가 계속 예약되어 있었던 닥터ㄴ은 그쯤 하여 인터뷰룸을 나갔다. 내일 연락할 거야 하고는.


사장님 닥터가 나가고도 매니저는 이거 저거를 더 물었다. 그중에 하나가 남편의 직업을 묻는 질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더 불쾌한데,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거 너무 개인적인 질문 아닙니까? 그게 제 업무 능력과 상관있는 건가요?' 하고 되묻거나 답하길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공손한 손을 하고 있던, 시급 이야기에 주저하며 10초간 눈빛이 흔들렸던 소심한 코리안 널스는 솔직하게 남편의 직업을 말했고 상대방의 흔들리는 동공을 역시나 보았다.


개인적인 질문은 되도록 피하는 문화인 이곳에서도 제법 자주 '니 남편은 뭐하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건설 현장 노동 기술직'이라고 대답하기 싫어서 '히즈 두잉 오운 비즈니스'라고 하면 꼭 덧붙여 물었다. '무슨 종류의 비즈니스?'. 젠장. 묻지 마!! 그놈의 오운 비즈니스 때문에 내가 요즘 머리 터지려고 하니까!!! 이런 경험을 통해 호주에서도 남편의 직업이 내 사회적 계급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30-40대의 한국 남자가 빈손으로 이민 와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그리 크지 않다. 한국의 대학교 졸업장이 제 역할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그래서 이민자의 세계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그의 직업이, 호주 메이저 사회에서는 거칠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계급으로 분류되며 물어봤던 상대방의 동공을 흔드는 직업이 된다. 아마도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더 필사적으로 더 큰 일을 도모하는 그의 '오운 비지니스'에 앞뒤도 안 보고 달려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노동 기술직보다는 노동 기술직을 부리는 사장님이고 싶었겠지.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콜릿이 가득 발려진 초코과자 두 개와 치토스 비슷한 커다란 봉지과자를 사서 와구와구 먹으며 새파랗던 호주 하늘에다 욕을 했다.

“에이 수박씨”


그냥 특정할 수 없는 이유로 기분이 더러웠다. 이 면접은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5시가 반쯤 지났을 때 처음 내게 전화를 걸었던 다른 사장 닥터ㅇ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

축하한단다. 자기들과 함께 한배에 탄 것에 대해.

...

[축하할 일 맞나요? ]

라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니

”오우 땡큐. 땡큐 쏘 머치” 라고 마음에 1도 없는 거짓을 숨도 안 쉬고 내뱉었다. 역시 페이는 제시했던 범위의 최저를 준단다. 내가 원했던 금액에서 2불이 적었다. 돈도 많이 버시는 님들이 참 짜다. 2불 더 준다고 지들이 먹고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닐 거면서... [나는 2불 더 버는 게 중요한 외국인 이주 노동자잖아! 이것드롸!] 고함은 뱃속에서만 울렸다.



얼결에 지원해서 얼결에 인터뷰까지 보고 휘뚜루마뚜루 합격했다는 전화까지 받았다. 취직하기가 이렇게 쉬운 일이었던가. (좋은 자리 안 찾으면 일자리는 많다는 게 사실인 건가)


이제 [주 2회 알바형 노동자]에서 [풀타임 생계형 노동자]로 거듭난다. 그래 내 인생이 이따위로 나를 괴롭히려 든다면 기꺼이 싸워주겠다. 싸우자 인생. 그리고 얼마나 지랄 맞을지 기대가 되는 두 번째 직장도!




(image ref: Pixabay로부터 입수된 Andrian Valeanu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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