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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타이퍼 Sep 28. 2019

일상의 상처도 결국 과거가 되고

흔적만 남은 상처라도 아직은 아프고 1



6월 어느 날.

꼼짝 않고 천장에 달린 팬을 바라봤다. 그러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주룩주룩 흐르고 콧물로 숨이 컥컥 막히면 더 크게 꺼이꺼이 울었다.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팬 날개 끄트머리에는 지난여름 동안 윙윙 돌며 모아둔 까만 먼지들이 한 줄로 주욱 나있다. 문득 신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세상에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잊히고 싶었다. 카톡을 열어 모든 단톡방을 나왔다. 엄마와 동생이 있는 단톡방은 남겨두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 두어 명 만 남기고 안 그래도 짧은 친구 목록을 모두 차단 목록으로 옮겼다. 다시 천장에 달린 팬을 봤다. 나는 용기가 없다. 카톡 목록을 정리할 용기까지가 전부다. 그가 도망친 지 열두 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일 오전.

그는 별안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전화해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고 지난 몇 달간 죽도록 노력했지만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완전히 망했음을 선언했고 당장 이곳을 떠날 예정임을 밝혔다. 황급하게 꾸린 짐을 현관 앞에 두고서 마주 앉아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겠노라고, 이혼을 하자고 하면 하겠다고, 너에게 피해 가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러고선 내게 "왜 이렇게 덤덤해"라고 묻는 그의 눈은 곧 쏟아질 것 같은 눈물로 그렁그렁 했다. 반대편 식탁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호흡도 심박도 더 느리게 뛰는 사람처럼 담담히 앉아 그런 그의 눈을 멍하니 그저 보았다. 사실 그때의 나는 실감이 나지 않은 탓에 반응에 지연이 온 상태였는데 그런 건 줄도 모르고 세상 온갖 풍파를 겪고 나니 이제 도가 트여서 이깟 일 쯤엔 흔들리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막상 그가 내 차를 끌고 (제 차는 이미 빼앗기고) 여길 피해 대략 300km쯤 멀어졌을 때 그제야 공포가 밀려왔고 600km쯤 멀어지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이 그려지다가 이대로라면 그냥 죽는 게 낫겠다는 도피성 결론에 이른 것이다. 천장에 매달린 커다랗고 먼지가 자라난 팬만 바라보며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론을 내려도 실천에 꼭 필요한 용기가 없어서. 이 세상에 나는 것도 내 맘대로 난 것이 아닌 데 가는 것인들 내 맘대로 가 질 리가.


내 도피성 결론이 용기 없음으로 서서히 무너질 때쯤 그도 도피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누군가 집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며 이 인간 어디 있느냐 분노하는 상상에 몸서리치며 있지도 않는 공포까지 만들어가며 불안을 극대화시켰고 그 결과로 제발 돌아와 달라며 오열하는 모습으로 덤덤한 도인의 자세를 잃은 지 오래였다. 결국 그는 다시 본인 집에 손을 벌렸고 당장 목을 졸라오던 돈을 해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게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설명해주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해시킬 의지나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즈음 일을 한 군데 더 구했다. 내 최선이었다.




7월.

새 직장의 일이 시작되었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쉽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내가 생각보다 내 일에 관해 많이 알고 있고 나름의 노하우와 자신감을 쌓아둔 상태임을 자각할 수 있는 기회라 어느 정도 즐기기까지 했다. 문제는 퇴근 후. 오히려 집에서는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다시 천장에 달린 팬이 보였다. 그날의 공포가 떠올랐다. 그의 뒤통수만 봐도 화가 났고 눈을 보면 울화가 일었다. 차라리 저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면, 그래서 저 눈을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러면 모질게 다 버려두고 내 살길 찾아 떠나버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자꾸만 있지도 않은 일을 후회했다.


문제의 몸뚱이.

 태생이 병약했다고 전해지는 나는 그 창창하던 이십 대에도 주 5일 직장생활을 온몸으로 버거워했다. 체력이 엉망진창인 사람이다 나는. 남들 다 하는 주 5일의 근로에 다리가 녹아내리는 것 같다. 앉고 설 때마다 허리가 아파 서다 말고 일시정지당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외할머니처럼 허리를 접었다 펼 때면 양손을 가져다 허리춤에 받치고 서서히 배를 내밀며 일어서야 한다. 그러니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이렇게 다리가 녹아내리게 일해도 우리의 생활고는 메워질 줄 모르는 밑 빠진 독이다. 먹고 살 돈이 모자라다. 고양이 밥을 살 돈이 없다. 주 500불에 달하는 렌트비가 감당이 안된다. 주급이 2주치씩 끊어져 나오니 아무리 일을 늘렸어도 두 번째 직장에서 주급이 풀리기 전의 2-3주간은 어쩔 도리가 없는 상태. 망해버린 현장을 수습 중인 그는 거의 생활비를 가져오지 못한다. 본인 빚을 갚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니 빚쟁이가 따로 없는 생활비는 오롯이 내 몫이 된다. 이 와중에도 그는 여전히 '돈 주고 담배 사서 수고롭게 태워 없애며 폐세포 손상시키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런 꼴을 보고 있자면 생돈이 타들어가 없어지는 것 같아 분노가 모인다. 못줘도 30불은 줘야 작은 담배 한 갑을 살 텐데. 거기 조금만 더 보태면 내 시급이 아닌가. 모아야 할 돈 대신 분노를 차곡차곡 모으며 나는 상상한다. 담배를 물고 있는 주둥이에 그대로 담배대를 욱여넣어버리는 모습을.



3주 후.

먹고 자는 것조차 해결이 되지 않던 궁핍의 극한에서 먹고 자는 것만은 가능한 가난 정도로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 다리가 녹아내릴 것 같지만, 퇴근 후엔 그의 뒤통수도 봐선 안되지만 다행히 남는 방이 있어 공간을 나눠 쓰지 않아도 되니 견딜만하다. 안락한 침대 매트리스 정도는 포기하고 맨바닥에 누워 자더라도 퇴근 후에는 혼자 있는 게 필수다.



8월 초.

갚을 돈이 태산이지만 먹고 자는 정도의 시급한 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므로 서서히 희망이 보인다. 이렇게 몇 달만 하면 어지간한 돈들은 갚을 수 있을 테고 엄마 돈도 해결할 수 있겠지. 희망 같은걸 품으면 꼭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고 좌절하는 내 인생 패턴을 발견한 후엔 애초에 '더 잘 되길’ 희망하는 것 따윈 희망하지 않기로 했으면서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희망이란 것이 반가웠다. 돈이야 벌면 되고 모자라면 아끼면 될 일이다. 트렌드에 맞게 미니멀리스트를 선언했으니 소비를 지양하는데 대외적 명분마저 그럴싸하다. 일단 주말이니까 깔깔예능이나 찾아보자며 지난 시즌 신서유기를 다시보기 하다 스륵 잠든 어느 일요일 오후. 그리고 그날 밤, 뒤통수도 피하던 그를 붙들고 지금 당장 응급실로 날 좀 데려다주라고 했다. 역시 희망이란 건 품으면 안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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