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신호음이 비현실적으로 들린 것은 당연했다. 결번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튀어나올 것을 예상했던 터라 신호가 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수화기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공연히 앉은자리에서 엉덩이만 들썩였다. 어째서 전화를 하게 된 것일까? 지난 시절의 열정의 찌꺼기가 작용한 것인가? 아니다. 열정이란 타고나면 찌꺼기조차 남지 않는 것. 외로움? 그따위 측정 불가능한 감정 덩어리는 나의 세계로부터 추방시킨지 너무도 오래다. 술? 취기에 기대서 어떤 행위를 하기에도 나는 세상을 너무 많이 보아 버렸고, 또 부대꼈으며 나이가 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발신음을 들으며, 또렷하게 그 횟수를 한쪽 뇌로 세면서 8년간의 결혼 생활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고 나는 생각했다. 대체 수화기를 집어 들고 열 자리의 다이얼을 돌린 내 행위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생각이었다.
풋밤!
나는 단지 밤 아홉 시 뉴스의 데스크 영상이라는 대목에서 그것을 보았을 뿐이다. 아직은 파르스름한 가시 덩어리로 밖에는 달리 보아줄 수 없는 풋밤. 카메라맨의 지시에 따라 여남은 살 된 사내아이가 실한 나뭇가지를 꺾어 그 풋밤송이를 벌리고 수줍고 여린 속살을 보여준다. 밤이라고 하기엔 아직 너무 이른, 여물지 못한 속살들이 등을 맞대고 숨어 있다가 햇살이 부신 듯 나른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나는 늦은 저녁 식탁에서 물러나 TV 리모컨을 작동시키고 그것을 봐 버린 것이다. 약 삼십 초 가량 조지 윈스턴의 ‘가을’이 배경 음악으로 흐르던 데스크 영상은 그 여린 풋밤의 속살을 앞니 끝으로 살짝 물어보는 소년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았다가 포토 컷. 이윽고 폭락 증시에 관한 보도로 바뀌었다.
열여덟 번. 수리를 담당하는 뇌수가 그렇게 발신음을 세었을 때, 전화를 받는 기척이 느껴졌다. 정확하게 받았다기보다는 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딸깍, 하고 경쾌하게 신호가 떨어지는 게 아닌, 어쩐지 나른하고 권태로운 분위기에다 부주의로 잘못 수화기를 건드린 것처럼, 혹은 누운 채로 팔을 가능한 한 길게 늘여 손끝으로 겨우 수화기를 밀어 올린 듯한 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열여덟이라는 숫자가 서재의 어둠 속으로 노쇠한 나방처럼 날개 가루 같은 부스러기를 남기며 흐느적대며 날아올랐다. 나는, 아홉 시 뉴스에서 풋밤을 보았다!라고 그 순간에 생각을 완결지었다. 이 전화의 발신은 온전히 그 까닭에 이루어진 것이다.
네-.
디지털시계의 붉은 야광 숫자판에서 AM. 1:28을 읽고 나서 ‘:’이 다섯 번 깜빡인 후에야 짤막하게 그러나 무던히도 지루하게 대답이 흘러나왔다.
전에는 고아원이었더랬어. 꼭 십일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산의 치마 말기쯤에 숨은 듯이 엎드려 있는 우중충한 잿빛 건물을 가리키며 그녀는 졸린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의 고른 치열이 아주 조금 희게 드러나고, 나는 도발적으로 키스를 하리라 생각했다. 십일 년 전, 그때 그녀는 어릴 적 고향으로 나를 데려갔었다. 폐쇄된 고아원과, 그리고 농가 십여 호가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고, 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내가 입을 떼기 위해 몇 차례 숨을 고르는 사이, 수화기 저편에서는 가늘고 불규칙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말없는 상대에 대한 의아함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참을성이 있는 기다림도 아니었다. 권태로운 오후에 틈입한 적요가 아무런 장애 없이 권태의 중추에 삼투되듯이 이편과 저편의 침묵이 순간적으로 동질화되었다, 고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여보세요,라고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일까, 그러면 이쪽도 여보세요,라고 적어도 그 한 마디쯤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네’에 대하여 ‘네’라고 답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덜그럭 대는 소리가 들린다. 전화기로부터 멀리 떨어졌던 몸을 당겨 왔거나, 혹은 전화기를 몸 쪽으로 당겼거나, 수화기를 고쳐 잡는다, 고 나는 어두운 허공에 장면을 연상한다. 방안에는 두꺼운 공기가 끼어 있고, 이가 빠진 찻잔 접시에는 립스틱이 묻은 삼분의 일쯤 타 버린 담배가 불이 꺼진 채 놓여져 있다. 삼분의 일쯤 타 버린 재가 꼭 그 길이만큼 해체되지 않고 담배와 사십 오도 각도로 누워 있다. 그리고 화장을 지워 낸 티슈가 세 장, 얼굴에 닿았던 만큼만 구겨진 채 널려 있다. 여자는 누비 홑이불을 끌어올려 가슴을 가린다. 그리고 마치 발신자를 가늠하듯이 가만히 허공을 응시한다. 비음이 잔뜩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번잡한 공항의 소음을 배경으로 들려온다. 오 르부와-르(Au revior). 여자가 대답한다. 수와네 부 비엔(Soignez-vous bien). 진부하고 지루한 프랑스 영화의 축 늘어진 도입부와 같다, 이건.
어째서……, 하고 나는 숨을 들이쉰 후에 그대로 호흡을 멈추었다. 디지털 시계의 깜빡거림을 여덟 차례 바라본 뒤에 다시 숨을 토해 냈다.
어째서 거기에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하고 나니 차가운 아내의 몸속에 정액을 쏟아 내고 난 뒤에 찾아오는 공허처럼 싸늘한 후회가 밀려왔다. 재빨리 욕실로 달려가 뒷물을, 자궁을 샅샅이 씻어 내는 아내의 물소리를 들으며 맞이하는 폐허 같은 후회다. 선택하지 말았어야 할 인생이다. 그러나 인생을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가. 나는 오히려 선택되어진 것이 아닐까. 아내는 내 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음핵에 대한 자극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나의 인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화병이나 오디오나 자동차처럼 소유 가능한 정물을 요구하는 것이다. 남편이라는 소품이 그녀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어째서 여기에 있느냐구?
전화 저편의 나른한 여자 목소리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마치 독백을 하듯이 중얼거린다. 두어 번의 고르지 못한 호흡이 느껴진다. 내 가슴속 깊이 패인 웅덩이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 추락한다. 고여 있는 폐유만 같은 감정의 찌끼 위로 새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날개를 꺾은 채 떨어져 푸르르 몸을 떤다. 흉한 물주름이 번지면서 반사광이 탁하게 빛난다.
그래, 어째서.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냈으나 피울 생각은 없었다. 그것의 필터 쪽을 의미 없이 톡톡 두드리며 나는 내 안으로부터 서서히 번져 나오는 떨림을 감지하고 있었다.
바보, 넌 예나 지금이나 바보로군. 내가 여기에 있는 건 네가 전화를 한 거나 마찬가지의 이유야.
나는 시간의 돌연한 뒤틀림을 인식한다. 분명 십일 년이라는 시간이 가로놓여져 있다. 가로놓여져 있기보다는 꼭 그만큼 소모되어졌다는 게 정확하다. 그리고 그만큼 기억은 쇠잔해져 불투명해지고 가슴속의 뜨거운 불덩이는 사위여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편 여자는 조금의 변화도 엿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물리적인 공세에 끄떡 않고 견디어 내는 요령이라도 그녀는 터득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십일 년이라는 시간을 삭제키를 눌러 손쉽게 지워 버린 듯하다. 나는 전화기의 몸체를 손으로 더듬어 본다. 언제나 나를 자격지심에 빠뜨리고야 마는 아내의 오라비가 함부르크에서 사다 준 전화기이다. 나는 도대체 함부르크와 전화기 사이의 연결점을 추측할 수가 없다. 함부르크하면 전화기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고, 전화기 하면 어떤 억지를 써도 함부르크가 연상되지 않는다. 그래서 함부르크로부터 전화기를 사다 준 아내의 오라비에게서 나는 수치심에 가까운 자격지심을 느낀다.
바보……. 십일 년 전에도 그녀는 내게 바보라고 했었다. 내가 책상머리에서 끙끙대고 있거나, 소주를 꼭지가 틀어지도록 마시고 허물어질 때 그녀는 물기 가득 머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바보’라고 아주 낮은 떨림을 가진 음성으로 말하곤 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릴 때 그 얼굴은 지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방금 그녀가 내게 바보라고 했을 때, 그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처남이 함부르크로부터 사다 준 전화기 속에서 그녀는 흘러간 시간의 박제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어딘가 많이 비어 있고 모자라다, 고.
지금, 네 표정을 보고 싶구나.
정말 이상한 바보야, 넌. 십일 년 만인 것 같은데 안부 정도를 일단 주고받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 안 해? 하고 그녀는 비로소 내 안에 일고 있는 시간적 착란을 바로잡아 준다.
어째서 거기 있느냐고 물었잖아.
어이없어, 그게 안부 인사란 말이야? 흠, 좋아. 일시 귀국.
일시 귀국? 외국에 나가 있었어? 함부르크?
나는 연상되는 대로 그렇게 물었다. 그녀가 웃었다. 어릴 적 동네 공터에 찾아온 약장수의 앰프에서 퍽 퍽 터져 나오던 파열음처럼 그녀의 웃음소리는 수화기 진동판의 찍찍대는 잡음에 묻혀 버린다. 그러나 파열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분명히 가려 들을 수 있다. 적극성을 띠지 않은, 무의식 중에 흘린 듯한 웃음소리, 마모되지 않은 웃음소리를 나는 느낄 수 있다.
아무려면 어때. 함부르크도 괜찮아.
뜻밖이군, 외국에 가 있었다니. 남편 따라서?
나는 조금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비가역적인 화학반응 속에 들어선 같다, 고 나는 생각했다.
흠, 비슷해. 인도야.
인도! 멋지군. 너다워.
시간의 간극이 증명되었음에도 그녀와 내가 십일 년 전과 다름없는 말투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답긴. 처음엔 일본이었고, 그 다음엔 스리랑카였다가 지금은 인도야. 그 남자가 가는 곳에 난 묻어 다닐 뿐인 걸.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지 못해. 선택되어지기를 기다릴 뿐이지. 바보스러워, 나 역시.
그녀는 다시금 불규칙한 호흡을 두어 번 했다. 나는 그것이 한숨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기다렸던 것일까. 난 힘없어,라고 그녀는 커다란 눈에 물기를 머금고 내게 말하곤 했었다. 어느 만큼의 거리를 항상 유지하면서 그녀는 항상 그렇게 머물러 있을 것 같았다. 혼란스러워진다. 그녀가 내게서 떠난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떠난 것일까.
그 남잔 지금 인도에서 요가를 수련하고 있어. 연극돈데 대체 요가하고 무슨 상관인지 같이 살면서도 난 몰라. 넌 어때? 결혼했다는 소식은 들었어. 결국 소설 쓰는 건 포기한 모양이지? 꼭 소설가가 되길 바랬는데…….
딸깍, 하고 금속성이 들린다. 라이터를 켜는 소리 같다. 담배를 피우던 십일 년 전의 그녀의 입술을 떠올려본다. 나는 그녀의 입술은 형이상학적인 데가 있다고 늘 생각하였다. 아니, 분명 그녀의 입술은 형이상학적인 부분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그녀와의 키스를 떠올려본다. 그녀와 키스를 하고 있으면 흥분은커녕 가슴속이 뻥 뚫려 나가는 듯한 공허감이 몰려왔다. 고뇌가 한웅큼 그녀의 혀에서, 타액에서 내 영혼으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 형용할 수 없는 어떤 앙금이 되어 내 가슴속에 쌓여 갔다. 나는 늘 그녀에게는 신비한 구석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연극도인 남편이 인도에서 요가를 수련하고 있다, 고 그런 그녀는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니 여잔 이뻐? 하고 그녀는 내가 대답이 없자 그렇게 물었다. 느닷없이 아내에 대한 물음이 튀어나와서 나는 적잖게 당혹스러웠고, 불쾌해졌다.
마흔이 낼모레야. 애들 같은 소릴 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