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생해 첫 홈런을 쳤습니다.

101번 글쓰기

by Typho

드디어 개인 프로젝트인 101번 글쓰기의 마지막이자 생애 첫 홈런을 친 경험에 대한 글이다.



결혼 직후, 골프가 찾아왔다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와이프네 회사에 골프 바람이 불었다. 덩달아 와이프도 배우기 시작했다. 집 근처 골프연습장, 6개월 이용권에 프로 레슨 10회 패키지까지.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들었지만, 그녀는 고민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불똥이 나한테도 튀었다.

"같이 배워볼래?"

고민이 컸다. 100만 원은 내게 작은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와이프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언젠가 직장에서 골프를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니, 지금 배우는 게 오히려 싸게 먹히는 선택 같았다. 그렇게 골프를 배웠다.

처음엔 공을 맞히는 것조차 어려웠다. 맞히기 시작하니 똑바로 보내기 힘들었다. 똑바로 보내게 되니 이제 비거리가 문제였다. 온몸에 힘을 주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고, 힘을 빼면 제대로 맞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힘을 어디에 분배해야 하는지, 몸을 읽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걸. 완벽하진 않지만 흉내는 낼 수 있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이 왔다. 사회인 야구팀에서 선배가 한마디 던졌다.

"야구 한 번 해볼래?"

그렇게, 나는 사회인 야구팀에 차출(?) 당해버렸다.


생애 첫 홈런

사회인 야구를 시작한 지도 벌써 5년. 대학 선배가 운영하는 팀에 신입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간 게 계기였다. 처음에는 장비 하나 없이 맨몸으로 갔다. 그래도 야구는 팀 스포츠다. 선배들이 글러브와 야구화를 물려줬다. 그렇게 한 시즌을 소화했다. 비교적 젊고 빠른 편이라 자연스럽게 외야를 맡았다. 그리고, 타석에도 조금씩 서게 됐다. 골프와 야구의 스윙 매커니즘이 비슷해서 곧잘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주로 8번 타자, 하위 타선. 그런데 그날, 팀 내 첫 홈런을 쳤다. 내 생애도 첫 홈런이었다.



홈런이라는 범상치 않음

치고도 믿기지 않았다. 공이 방망이에 맞는 순간, 특별한 감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잘 맞았고, 멀리 날아갔을 뿐이다. 그런데도 묘했다. 홈런이라는 건, 하고 싶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문득 궁금해졌다. 사회인 야구인 중에서 홈런을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즘 아들은 10개월 차. 세 끼 챙겨 먹이고 나면 하루가 금세 저문다. 그런 일상 속에서 맞이한 홈런은, 갑작스레 터진 만루 홈런처럼 느껴졌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일도 아니고,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에겐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사소한 순간 하나가 이렇게 특별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힘의 역설

사즉생, 생즉사. 필사의 힘을 다해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말. 힘에도 그런 역설이 있다.

누구나 힘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힘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아무나 모른다. 나도 아직 잘 모른다. 여전히 힘을 줘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를 헷갈린다. 하지만 홈런을 친 그날, 나는 힘을 뺄 때를 알았다. 타석에 서기 전부터 몸의 뒤쪽에는 100의 힘을 담아두고, 앞으로 휘두를 때는 30만큼만 썼다. 그래야 배트를 끝까지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을 홈런처럼 날리고 싶다면, 오히려 힘을 빼야 한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힘은 얼마나 갖고 있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힘의 역설은 단순하다. 강해지려면, 힘을 빼야 한다.


특별한 만큼 평범한

홈런을 치고, 환호를 받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짜릿했다. 그런데 그다음 타석에서는 볼넷 하나로 출루하는 게 전부였다. 특별함은 찰나였고, 평범함은 금세 돌아왔다. 홈런을 친 기억이 남아 있는 한, 다음 타석에서는 힘 조절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특별했던 기억은 재빨리 평범함 속으로 흡수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순간도 제대로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단톡방에서 선배들이 축하 메시지를 남기고, 영상이 공유되는 걸 보면서 다시금 기분이 좋아졌다. 가족 단톡방에 자랑까지 했다. 내심 뿌듯했다. 홈런이란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건 평생 써먹을 영웅담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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