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지향
영화 ‘스파이 게임’에서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스카치 위스키는 최소 12년을 먹어라"는 대사를 합니다. 그만큼 12년이 위스키 맛의 최소 기준으로 볼 수 있죠. 물론 버번은 10년 이상을 고숙성으로 여겨 스카치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그래도 13년 숙성이라면 최소 12년보다는 맛있을 거라는 기대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버번에서 13년 숙성은 같은 와일드 터키 증류소에서 만드는 러셀 리저브 13년이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그러니 같은 숙성연수인 와일드 터키 13년에 대한 기대가 높았습니다. 물론 데일리샷이나 온라인 리뷰에서 호불호가 강하다는 우려도 좀 있었지만, 마침 와인앤모어에서 할인하여 6만 원대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별 고민 없이 구매했는데, 맛이 없었습니다. 너무 쓰고 라이트 해서 손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마곡 트레이더스가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갈 일이 생겼는데, 와일드 터키 12년을 쌓아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91,900원. 지금은 보통 15만 원, 비싼 곳은 20만 원도 넘게 팔고 있으니, 저때 가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가격이었습니다. 한 병만 더 사둘걸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아무튼 와일드 터키 12년을 우연히 사게 되었는데, 맛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습니다. 13년과 비슷한 시기에 사게 돼서 비교가 돼서 그런지 기대한 것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너티하고 달콤하고 묵직했습니다. 이후에 일본 가서 사게 된 에반 윌리엄스 12년과 비슷한 맛이 났습니다. 일단 쓴 맛이 없고 바디감이 있어 좋았습니다. 그래서 손이 자주 갔고, 지금은 1/3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일본에는 8천 엔, 대만에서는 5만 원 정도라서 한국에서는 다시 살 생각은 없습니다. 하루빨리 해외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로 맛있고 쟁여둘 만한 위스키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위스키를 마시더라도 마시는 사람에 따라 맛을 다 다르게 느낍니다. 그리고 같은 위스키를 마시더라도 마시는 시점에 따라 맛을 다르게 느낍니다. 그래서 위스키 앞에서는 겸손해지고 흥분됩니다. 내가 마셨던 위스키와 내가 마실 위스키가 맛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13년보다 12년을 맛있게 마시고 있지만, 에어링이 한참 진행되고 페어링할 음식이 달라지면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맛있는 위스키는 매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맛보고 기억해야 합니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생각하고 매일 위스키를 한 잔씩 마십니다.
개인적으로 저녁을 다 먹고 잠자기 1시간 전에 글렌캐런 잔에 30ml 미만으로 따르고 작은 얼음 1조각을 넣은 니트를 제일 좋아합니다. 거기에 코스트코에서 파는 달콤한 호두를 곁들이면 최고의 하루 마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음식에 따라 위스키를 페어링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능하면 위스키는 위스키 위주로 즐기는 것을 선호합니다. 위스키도 요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지고 있는 와일드 터키는 이제 마스터스 킵 비콘밖에 없습니다. 다만 단박에 끝판왕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단계적으로 ‘레어 브리드’와 ‘켄터키 스피릿’ 순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중간에 러셀 13년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11월 초에는 시중에 풀릴 것 같으니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