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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Feb 24. 2019

#2. 회사 근처 스타벅스

101번 글쓰기

바쁜 날, 점심의 회사 근처 스타벅스

오늘 오전에는 일이 넘쳤다. 보통 출근하면 커피를 내려 마시고, 간단히 뉴스 클리핑을 한다. 업데이트된 경쟁사 광고는 있는지 살펴보고, SNS에 공유되는 해외 신규 광고도 찾아본다. 그러면 점심시간이 금방 찾아온다. 그런데 오늘은 일이 많았다. 점심시간이 언제 되었는지도 몰랐다. 힘겹게 찾아온 점심시간을 지나칠 뻔했다. 이렇게 바쁠 때면 회사 근처 스타벅스를 들르곤 한다. 그러면 첫 해외여행의 첫 여행지에서 들렀던 스타벅스 1호점이 생각나 스타벅스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파이크 플레이스 원두 패키징이라도 보면 코 끝이 찡해진다.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스타벅스 1호점

스물다섯 살에 처음 해외여행을 했다. 목적지는 미국. 처음으로 발을 내디뎠던 곳이 워싱턴 주의 시애틀이었다. 샌디에이고를 가기 위해 경유했던 곳이기 때문에 반나절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다. 시애틀에 간다면 딱 하나 해보고 싶었다. 스타벅스 1호점 방문.


가는 길은 험난했다. 일단 입국심사에 걸렸다. 허리춤에 권총을 살짝 드러내면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엄근진 하게 말하는 직원을 따라 취조실로 들어갔다. '미국에는 왜 왔느냐, 무엇을 하러 왔느냐, 예약한 숙소는 있느냐, 얼마나 머물 예정이냐, 미국에 가족은 있느냐, 현금은 얼마나 있느냐' 등 영어도 못하는데 권총을 보니깐 정신이 바짝 들어 알아듣게 되어 버렸다. '3개월 여행하러 왔다. 미리 예약한 암트랙 티켓과 숙소 영수증이 있으니 보여주겠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이모 가족이 사신다, 그곳으로 갈 예정이다.'라고 대답하고 이모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는 잠시 자리를 비워 통화를 하고 오더니 상냥한 미소로 "Welcome to USA."라고 했다.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


아무튼 시행착오 끝에 시내로 가는 트램을 타고 중심가 어디쯤에 내렸다. 스타벅스의 도시답게 코너마다 스타벅스가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그 덕에 와이파이는 끊기지 않았다. 구글 맵으로 스타벅스 1호점을 찍고 찾아가니 주문진 같은 항구가 나왔다. 영업시간이 끝난 수산시장을 지나 수제치즈가게, 쿠키가게를 지나.. 도 스타벅스 1호점을 찾기 쉽지 않았다. 보통 한국에서 1호점들은 리모델링을 통해 자금성 같은 위용을 갖추는 것이 일반적이니 스타벅스 1호 점도 그러할 거라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럴 때는 동양인을 찾으면 된다. 한국사람이 어떤 가게에 많다면 그곳은 유명한 맛집일 테다. 마침 한국어가 들렸고, 그들이 나오는 곳의 간판을 보니 STARBUCKS라고 쓰인 타이포를 보았다. 찾았다. 어디서든 한국인만 따라가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잠깐 드러난 미국의 모습

시애틀에는 정말 잠시 있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이미지, 잘 찍어둔 사진이 없다. 다만, 미국이 어떤 나라일지 가늠이 갔다. 많은 이들이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있었고, 거리에는 배변 비닐이 비치되어 있었다. 이른 저녁이었지만 문 닫는 상점이 많았으나, 거리에는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퇴근을 하고 산책을 나온 듯 보였다. 저녁 있는 삶이라는 보는 것 같았다. 스타벅스 1호점에서는 상징성보다는 지점이 지닌 Heritage를 보전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행기가 착륙하면서 내려다봤던 시애틀의 도시구조는 아직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도심의 마천루를 제외하면 낮고 넓은 건물들이 일반적이었고, 외곽의 셀 수 없이 분포된 개인주택에는 나무 2~3그루가 기본이었다. 토지를 집약적으로 활용하는 한국과 달리 토지를 확장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충분한 공간과 녹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들 삶의 여유를 은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애틀에서 반나절은 미국을 잠깐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덕에 시애틀은 나에게 햇살 따스한 여유의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회사 근처 스타벅스마저 나에겐 여유로운 시애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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