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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Feb 03. 2021

#30. 삼전동네

101번 글쓰기

양양군민에서 송파구민으로


생애 첫 투룸전세

생전 처음 혼인신고를 했다. 8년을 사귄 여자친구와의 PHASE2.를 맞이한 순간이었다.

수중에 가진 돈은 5천만원도 되지 않았지만 LH 신혼부부전세대출을 통해 2억이 넘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강아지가 있어 집구하는게 어려웠는데, 3번째 발품을 팔기로 했던 주말. 마침 원하는 가격대의 투룸빌라 전세가 하나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집을 보러 갔다. 삼복 더위가 기승이던 8월이었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아스팔트 열기와 머리 위 태양의 열기가 아래 위로 강타해서 열사병에 걸린 것 처럼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경험을 했다. 그런 날 집을 보러 가면 좋은 점이 이사할 집의 컨디션 체크가 적나라하게 된다.


벽이 얇거나 오래된 건물이었으면 방을 볼 때, 곰팡이 냄새나 단열재가 부족해 온방이 후끈할 텐데, 다행히 내가 보러 갔던(지금 이사한 집)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비록 창문에 인접해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어 창 밖 풍경은 욕심낼 수 없었지만 직사광선이 없어서 집이 뜨거워질 염려는 없었다. 길었던 장마가 끝난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는데 곰팡이 냄새도 없었다. 무엇보다 3층이라 엘리베이터도 필요 없었고, 강아지를 키울 수 있다고 해서 바로 계약금 넣고 LH로 권리분석까지 해서 바로 이사일정과 이사날까지 정했다.


생애 첫 송파살이

사실 예산의 한계로 중랑구 쪽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여자친구가 송파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석촌호수를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와 주거 단지가 밀집해 있고, 치안안 여러가지 주거환경을 봤을 때 중랑구 보다는 송파구가 좋다는 것이었다. 예산의 한계만 돌파하면 나도 이견은 없었다. 그래서 여러 차례 발품을 팔아 지금의 집을 구했다. 9월에 이사해 10월 중순이 되서야 집안의 구색이 갖춰졌다. 집만 구해놓고 가전이나 가구를 차례로 들였기 때문이다. 가전을 사다가 들은 일인데, 어떤 신혼부부는 가전부터 사놓고 집을 구했다가 사이즈가 안 맞아 전부 반품했다고 한다. 간혹 발생하는 일이라고 한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9호선 삼전역이 있고, 역에서 10분이면 회사에 도착하는. 나에게는 최적의 입지였다. 그리고 5분 거리에 작은 공원이 2개나 있고, 조금만 가면 잠실 롯데월드와 20분 거리 안에 석촌호수가 있어 강아지와 산책하기 그만이었다. 송파, 특히 삼전동은 오밀조밀 다 모여있으면서 지근 거리에 강남이란 대도심이 있고, 동네 자체는 빌라밀집 지역이라 사람 사는 냄새도 물씬 풍기는 참 좋은 동네였다.


첫 눈

그렇게 이사를 와서 지낸 던 날. 기대 하지 않았던 폭설이 왔다. 도로의 차들은 뒤엉켜 최악이었겠지만 지하철을 타고 걸어다니는 내게는 온통 하얀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늦은 퇴근길, 눈 쌓인 길에는 가로등이 반사 되 대낮같이 환해졌고, 그 길의 끝에는 나를 마중나오는 여자친구와 강아지가 있었다. 집 앞과 공원에는 코로나로 집콕하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눈사람을 만들고 눈앞을 쓸고 하면서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모멘토를 만들어 주었다. 마치 나홀로집에를 보면서 느꼈던 어릴적 환상과 행복감을 재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삶은 현실과 이상의 반복 인 것 같다. 집이라는 곳이 특히 그렇다. 구하는 과정은 지독한 현실이지만, 그곳에서 사는 순간순간은 이상적 삶의 실현이다. 참. 표현하기 어렵고, 표현할 방법이 없는 평범하지만 지독하게 특별한 감정이자 삶이자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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