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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Mar 03. 2021

#42. 버그내 순례길

101번 글쓰기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


2017년 여름 산티아고 순례길의 북쪽길을 완주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걷기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을 때, 순례길을 함께 걷지 못했던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충남 당진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곳에는 지금 교황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순방 때 찾으셨던 버그내 순례길이 있다. 당진이 한국 천주교가 시작한 곳이고 그 때문에 1791년 신해박해, 1868년 무진박해의 현장이 된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 주변을 솔뫼성지로 조성하여 신리성지까지 이르는 버그내 순례길(총 13.3km)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은 산티아고 순례길 만큼이나 길고, 긴 역사를 이어온 곳은 아니지만 한국 유일의 순례길이자 산티아고에서 느꼈던 성스러움이 발자국 마다 마다에 닿는 곳이라는 점에서 느낌이 남달랐었다.


800km 이상을 걸었지만 성스러운 곳을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걷는다는 것은 운동이나 일상생활 그 이상의 감상을 들게했고, 걷는다는 단순한 행동만으로도 나를 복잡미묘하게 만드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복잡미묘함은 걷기, 즉 내가 행동하는 가장 쉽고 근본적인 행위를 통해 내가 나를 느끼는 것이었고 스스로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요즘 새로운 경쟁PT가 이어져서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일상인 이자 삶의 주체로서의 나 사이에서 혼동이 오기도 했다. 물론 둘다 '나'라는 존재이지만 내가 스스로 목적성을 가지고 행하느냐 남이 시키는 것을 과제로써 하느냐는 언제나 나를 헛갈리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내가 생각해도 나는 복잡하게 사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걷는 것, 경건한 곳을 걷는 것이 무엇보다 생각을 단순하게, 주체적인 나를 감지하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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