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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Nov 17. 2022

#54. 연애 9주년. 결혼 2주년

101번 글쓰기

지난 11/15(화) 지금의 아내와 사귀기로 한 첫날로부터 9년이 되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대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둘다 직장인이 되어 9주년이 되던 날 둘다 야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깨닫고 '9주년이니 뭐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브런치에 글을 남기고 있고,
아내는 아직까지 9주년인지도 모르게 야근을 계속하고 있다.

주머니 3만원
아내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11월 5일 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두달 정도 되었어서 수중에 돈이 정말 없었다. 전역하면 보통 부모님께 손을 안 벌리려는 아집이 생긴다. 뭔가 남자 답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머니에 3만원이 전부였었다. 그 돈을 가지고 소개팅을 한다고 해서 아내를 만나 제육볶음으로 둘 사이의 첫식사를 했다. 다행히 아내가 자기가 있는 곳으로 보러 와주었다고 제육볶음을 사주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낀 3만원으로 그날 저녁 대학동기들이랑 술을 먹었던 것 같다.


다음 만남은 11월 11일이었고, 중간에 택배 상하차를 해서 몇푼을 더쥐게 되어 그날에는 제과점에서 빼빼로를 사서 줬었다. 나중에 아내가 말해줬지만 "애가 순순해 보였다."고 했다. 그렇게 만나게 되다가 열흘만에 고백해서 지금까지.. 사귀고 살고 있다.


슬리퍼와 하이힐

또래들의 연애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가 먼저 취업'이 우리에게도 찾아왔다. 보통 여자가 먼저 취업을 하면 2가지로 나뉜다. 남자가 열등감을 가지거나 여자가 더 좋은 남자를 만나거나. (구시대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주위경험담 이니 이해..) 나는 전자였다. 아내가 먼저 취업해서 일을 하니 열등감이 생겼었다. 그래서 만나면 그렇게 싸웠다. 어느날 아내를 자취방에서 만나적이 있는데, 아내를 바래다 주면서 발걸음을 유심히 보니 나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퇴근한 후 나를 찾아와준 아내는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학생신분의 남자친구와 직장인 여자친구의 신분이 명확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나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서 열등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대리와 이사

나는 광고일을 하다 보니 다른 업계보다 1~2년 정도 대리를 먼저 달게 되었다. (보통 회사 사원-주임-대리를 5~7년 정도이라고들 하던데, 광고회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사원-대리가 만3년이면 된다.) 그 사이 아내는 이사가 되었다. 아내는 일종의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해서 진급이 빠르기도 했지만 일도 잘하기 때문에 이사라는 직함을 얻게 되었다. 이사님과 결혼하면 좋은 점으로는 왠지모를 든든함과 생각 보다 단가가 높은 축의금이 있겠다. 아내가 직급이나 income이 나보다 높기 때문에 나도 동기부여가 더 되었고 지금은 대기업으로 이직을 완료했다.


맨손부부

양가의 도움 없이 결혼하다 보니 대부분의 것들이 편하다. 누구 하나 참견하는 이 없고, 우리 마음 대로 해도 존중을 받는다. 집도 전세긴 하지만 나라에서 운영하는 신혼부부전세제도를 이용해서 잠실에 얻었고, 강아지도 같이 머물 수 있어서 지금은 세가족이 되었다.


와이프도 집안의 도움없이 어릴적 부터 각종 알바를 뛰었고, 성실히 학교 다녀서 어린 나이에 취업해 지금 이사의 자리까지 올랐다. 나도 뭐.. 집에서 금전적 도움 없이 대학생활 잘 견디고 바로 취업해서 서울여자와 결혼해서 강남3구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수중 3만원에서 시작한 만남이었는데 이정도면 대성했다고 본다.


연애 9년차. 결혼 2년차

내년에는 연애 10년차. 결혼 3년차가 된다. 아이도 갖고 싶고, 더 좋은 대기업에서 각종 복지혜택을 누리고 싶다. 더 뭔가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의 텐션을 유지하려고 한다.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원동력 삼아 오늘을 강력하게, 지금과 같이 살아가려고 한다.


감정을 위한 관계인가, 관계를 위한 감정인가. 나와 아내는 후자쪽을 택했던 것 같다. 사랑의 숭고한 가치를 알고 있지만 지키려 들지 않고, 관계를 위해 잘 이용했던 게 오늘을 기록할 수 있게 한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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