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ypho Dec 06. 2022

#55. 디벨롭퍼의 관점

101번 글쓰기

요즘 가장 갈증을 느끼는 부분


#회의에 대한 회의

광고회사를 다니니 당연스럽게 경쟁PT를 계속하게 된다.

그럴 때 항상 기획팀과 제작팀은 의견과 이견을 난잡하게 회의에서 나누게 된다.

그럴 때 항상 '나의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한다.

회의가 계속되면 대부분이 동의하는 줄기가 생긴다. 그 줄기는 뿌리를 내리고 어느 순간 부터 꺾이지 않는 나무가 되어 버린다. 그 때부터 '뿌리를 내린 단단한 나무'는 아무도 뽑을 수 없는 신성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 나무가 경쟁PT의 승리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 나무를 베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다.
'경쟁적 관점에서 저 나무가 과연 튼튼하다고 할 수 있나?'
'숲으로 봤을 때, 과연 저 나무가 이 숲에 어우리는 나무라고 할 수 있는가?'
'저 나무는 과연 과실을 맺을 수 있는가?'

'우리의 도끼에는 쓰러지지 않지만, 남의 톱에는 손쉽게 쓰러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다양한 관점에서 나무를 들여다 보면, 신성시 되는 저 나무가 과연 경쟁PT의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회의의 회의를 하지 못한다.

나의 생각이 대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나무를 신성시 하는 분위기, 논리적 약점 등이 있기 때문이다.


#디벨롭퍼의 관점

나의 생각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면, 신성시 되는 '뿌리가 깊이 내린 나무'를 베어버릴 수 없다면, '어떻게 하면 저 나무의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디벨롭퍼의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디벨롭퍼는 부동산 업계의 언어이다. 부동산 디벨롭퍼들은 저가치 부동산을 다양하게 보강해 고가치 부동산으로 탈바꿈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 이런 관점과 활동양상은 광고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학부생 시절, 카피 출시 노교수님의 강의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게 '3관 연습'이다.

연관 없는 것을 연관 시키기, 세상 모든 것에 관심 가지기, 장점들의 관계 만들기.

이런 관점에서 신성시 되는 나무(나에게는 베어버리고 싶은 나무)의 부가가치를, 디벨롭핑 해내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점이 있다. 디벨롭퍼의 관점이 저 신성한 나무를 더 나은 방향, 더 다양한 가치로 발전시켜 나가게 하기에 효과적이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지금 내가 업무를 보는 곳에는 없다.


문화라는 미명하에 관습(내가 보기에는 인습)이 신성한 나무를 지켜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신성시 된 나무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합의된 의견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이곳의 문화에 디벨롭퍼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나만의 생각일 뿐 그 누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경력관리가 필요하기에 퇴사를 선택할 수 는 없다.

가정이 있기에 지금의 환경을 쉽게 바꿀 수 없다.

계획이 있기에 직장의 안정성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갈증은 더 심해진다.


#킬러본능

축구를 좋아하기에 레전드 공격수들의 공통점을 잘 알고 있다. 한 번의 기회를 골로 연결시키는 능력

탁월한 위치선정, 화려하지 않아도 스탯을 쌓는 공격수, 군더더기 없는 슛


더 많은 광고를 보고, 더 많은 기획서를 보고, 더 많은 콘텐츠를 보고, 더 많은 생각을 하는 수 밖에는 방법이 없다. 한 번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에서 괄목할 생각을, 기억에 남을 한 단어를, 귀에 멤도는 문장을 쏟아낼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데이션을 할 때, 일단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 스스로 반문하면서 빠르게 정리한 생각을 재정리한다. 정반합의 과정도 거쳐보고, 실마리가 되는 단어에서 다시 시작도 해보고, 논리적 흠결을 보완도 해보고, 관련 없는 단어들도 연결시켜보고, 물리적으로 단어를 가로로 세로로 이동시켜보기도 한다.


그렇게 스스로 단기간에 디벨롭핑의 과정을 2~3차례 겪은 후에 회의에 참석한다. 그러면 내가 정리한 문서에서 한 단락, 한 단어, 한 문장이 살아 남는다. 지금은 거기에 만족하며 미약한 능력을 쌓아 올리고 탄탄하게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박웅현 CCO가 이야기 했다. 좋은 아이디어는 생존력이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기 위해서 디벨롭퍼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

(안 그러면.. 퇴사할 것 같다.. 이 곳에서..)

작가의 이전글 #54. 연애 9주년. 결혼 2주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