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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Mar 31. 2022

#53. 탈광고시대

101번 글쓰기

# "사람 구하기 힘드네요."

얼마 전, 유명 디지털 에이전시의 MZ광고인과의 대화라는 세션에 참여한 적 있다.

그 회사의 문화와 성공 케이스, 그리고 참여한 MZ 세대 광고인들의 이야기가 오고간 자리였다.

그 중에서 내 눈귀는 '탈광고'라는 단어에 집중이 되었다.


사실 나는 중학교 때 부터 '광고'라는 것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오길비 같은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다. 광고문안과 그에 어울리는 비쥬얼이 조합된, 누가 보더라도 멋드러진 광고가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광고를 전공했고. 첫 직장도 광고회사를 선택해 입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카피라이터가 되지는 못했다. 뽑질 않으니.. 지원 자체가 불가했다. 국내 TOP2에서는 그 당시만해도 카피라이터를 뽑긴 했으나 학벌과 스펙이 중요해서 내가 지원할 엄두를 못냈다. 그래서 '우선 광고계에 발을 들이고, 이후에 경력을 쌓아서 카피라이터로 전향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AE가 되었고 올해 5년차가 되었다. 독립광고대행사에서 시작해 지금은 인하우스 에이전시로 이직을 했다.


내가 전 직장을 떠나면서도, 현 직장에 오게되면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사람 구하기 힘드네요.."
온 나라가 청년취업을 걱정하고 있는데, 막상 현업에서는 사람 구하기 힘들다고 하니. 이만한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싶다.


광고과를 나왔지만 내 주변에 광고일을 하는 동기는 다섯손가락에 꼽고, 내 연차에 광고를 계속하겠다는 사람은 정말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래서 전 직장에 내 후임자리는 여전히 공석이고, 내가 옮겨온 직장의 빈 자리도 여전히 비어 있다. 더군다나 옮겨온 직장의 여러 자리들이 여전히 비어 있고, 당분간 채워질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광고업에 대한 선망성을 없앤지 오래이고, 워낙 3D 업계로 소문이 나서 그런 탓이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있고, 기획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소위 스타트업이라는 곳으로 가버렸다.


# 최소 10년은 해보련다


나도 몇 번의 기회는 있었다. 탈광고의 기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10년을 꽉 채우고 싶다. 광고라는 것이 단순하게 15초 TVC를 만드는 과정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광고주의 무수한, 제한 없는 요청을 처리하고 성과를 만드는 모든 것들이 광고이기 때문이다. 탈광고를 한다고 해서, 기획을 안 하거나, 새로운 생각을 안 하거나,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지거나, 성과에 대한 압박이 없어지거나 하질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광고라는 일을 하게 되면 매번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매번 새로운 방법을 찾고, 그것의 '좋은' 결과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게 된다. 거기서 나는 아직도 광고의 존재가치와 일로써의 재미를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탈광고는 광고라는 산업 자체의 사양성 보다는 개인별 적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이 능력이 부족해 도태되는 개념이 아니라 정말 적성이 안 맞아서 적응의 문제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경쟁PT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업무가 많으면 야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생각이 필요하다면 밤을 팰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이 되기만 한다면, 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탈광고를 하더라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업인인 동시에 직장인이라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드시 꼭 필수적으로 해소하는 방법도 익혀두어야 한다.


윤석열이 120시간을 이야기해 뭇매를 맞았지만, 그 말의 콘텍스트는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 말에 반감을 가지고 팩폭을 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간다. 의지와 현실의 괴리이자 이질감이 있다는 것에 현업의 실무자로서 무척이나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탈광고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탈광고를 하더라도, 기획업무를 하는 대부분의 사무직들은 협업을 해야하고, 사람을 상대해야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탈광고를 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탈광고 말고 다른 대안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냥 그렇다.


내가 광고를 계속 하고 싶은 이유는 무수히 많지만, 사실 진짜로 계속하고 싶은 이유는 항상 새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 막연한 기대 (좋은 광고주를 만나, 돈 펑펑 쓰고, 스트레스 없이 제작팀과 기획팀이 원하는 아이디어로 좋은 성과로 캠페인을 마무리해서 경쟁PT 없이 연장계약을 하는 것)를 실현 시키고 싶은 허상의 욕심도 있다. 이런 행복회로 하나 쯤 가지고 일해도 좋다는 생각이다. 그냥 그렇다고..!


# 사람을 뽑습니다.

나는 일개 팀원 이지만, 우리팀에서 사람을 뽑고 있어 나랑도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배울 수 있는 유능한 분이 내 위로 왔으면 좋겠다. 광고를 루틴적으로 하는 사람 말고, 여전히 재미를 붙여서 하시는 분이 오시면 좋을 것 같다.


나의 사수들 (지금은 다 다른 곳에서 일하지만..)이 항상 내게 해줬던 말,
"너는 광고가 재밌니?"
"네..ㅎ"
"그래, 너는 계속 재미를 붙여. 나는 이제 재미 없다.."


이런 말에 '나는 아닌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연락 주시면 좋겠당.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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