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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찌니 Apr 29. 2020

자폐 아이와 단둘이 제주 여행

남편은, 미친 짓이지만 엄마는 용감하다고 했다.


한창 불안감과 예민함에 착석까지 틀어진 이 시기에 난 비 오고 강풍주의보 뜬 날을 골라 제주도에 왔다.

힘들다. 그리고 즐겁다. 후회하진 않는다.

남편이 혼자서 자폐 성향의 아들을 데리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가는 건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엄마는 용감하다며 응원과 존경의 눈빛을 보내줬다.

느리게 크는 이 아이에게 모든 경험들이 필요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말을 하지 못하니 의사 표현을 울음, 짜증으로 나타낸다.

시간,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에겐 TPO에 맞는 무엇을 기대하기란 아직 어렵다.

울고 짜증내고 드러눕고 소리 지르고 뛰어다녀도 점점 무뎌짐을 느낀다.

주변의 신경은 더 꺼버리고 아들에게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아이가 떼를 쓰면 내리라고 하진 않을까

안전벨트는 할까 등등

너무나 많은 걱정들이 있었지만, 괜찮았다.

안 탄다고 하면 내리지 뭐.



사실 비행기는 소멸 직전인 마일리지를 사용했고,

 숙소도 같이 간 친구 아빠 찬스로

저렴하게 예약해서 사실 비용에 대한 아까움은

 없었던 것 같다.

먼저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좋은 옆 좌석 승객을 만나 이해해주셨고 승무원들도 적극 협조를 해주었다. 아이는 내 품에 안겨서 안정을 얻었고 우리는 무사히 이착륙을 마쳤다.




제주도 여행의 본격 시작

첫날, 귤 쟁이 아들은 귤나무 하나를 골랐다.

귤 따기 체험은 관심 없고 나무 아래 서서 나무 하나 다 먹어치우나 싶었다.

귤 까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내륙에서 다져 섬에 와서 귤 까는 실력을 발휘하는 아들이다.


동백꽃이 남아있다 꽃향기가 내 맘을 찔러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너만을 사랑해' 푯말과 아들이 있는 사진과 함께,

남편은 이렇게 답이 왔다. '아빠도 너만을 사랑해'

어이구, 로맨틱은 이제 저 멀리 사라지고 의리만 남은 우리 부부 되시겠다.


아들을 태우고 자전거를 달린다.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멈출 수가 없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다...ㅠㅜ

1년 치 운동 여기서 다 한다고 해도 네가 좋다면야 엄마는 달릴 수 있어, 아들~


하지만 결코 여행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몸은 체력장 한 것 마냥 근육통이 오고

조식 레스토랑에서 모든 이의 시선을 느끼며

이동할 때마다 실랑이를 했지만

그 모든 것이 반짝이는 추억이 되어 아이의 삶에 자리 잡을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참 잘했다. 찌니!!




둘째 날, 아이가 좋아하는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아이는 물속에 사는 동물들을 참 좋아한다. 고래, 상어, 가오리.

그래서 여행의 최종 목적은 이 곳이었다.


아쿠아리움 입구를 지나니 커다란 고래가 나온다.

자폐 성향의 아이들은 점묘화를 좋아하고 그림도 점묘화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도 역시 점묘화 같은 효과가 있는 고래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남편에게 이 사진을 보냈더니 마음이 아프다고 답이 왔다.


다른 아이와는 다르게 세상이 보이는 아들의 모습을 담은 것 같다고..

쓸쓸해하거나 가라앉지 말라고 포즈 취하고 사진 찍는 건

아이에게 어려운 일이라 이렇게 찍는 거 아니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지만

 나 역시도 조금은 씁쓸해진다.

아이의 시선과 아이가 보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너무 궁금하다.

언제쯤 아이는 우리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더 기다려야겠지...



가오리 먹이 시간이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수조 앞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고 아이만 남아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찍었다.

 빨리빨리 흘러가는 그들의 시간과는 달리

느리게 느리게 가는 아이의 시간은 가끔 이렇게 좋은 장면을 만들기도 한다.

수조 앞에 오래 서있던 아들을 보며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수조를 거슬러 내려오던 가오리와 서로를 한참 바라보던 아이는

서로 무슨 교감을 나누었을까?

그냥 나는 경이로웠다. 아름다웠다.

동영상으로 남겨둘걸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내 눈엔 그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마음 가득 남아있다.   


여행을 하면서 안전벨트를 하지 않으려던 습관이 없어졌고

아무거나 잘 먹게 되었고

밖에 신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얼마나 얌전히 이륙을 지켜보고 있는지

나는 울컥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냈다.



여행을 다녀와서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핑계를 대며

아이와 집 밖에 나가기를 두려워 한건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시선들에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는 세상 밖으로 이제 나오려고 한다.

한걸음 한걸음.

그 어렵지만, 힘들지만, 용기 있는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그 핑계에 가려진 시간들은 뒤로 하고 엄마의 용기로 앞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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